한국사회 세대간 고통분담과 혜택의 대차대조표는 후(後)세대로 내려갈수록 절대적으로 불리해지는 구조이다.
공적자금 상환 청구서의 70%이상이 30대 이하 앞으로 청구되고, 30대 이하 세대가 연금을 수령할 때는 연금은 말라버린다. 25년 후면 국가 총지출의 40%가 오로지 노인들을 위해서만 사용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세대간 고통분담 설계도에는 원인제공자 부담의 원칙도, 수익자 부담의 원칙도, 후세대에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고자 하는 의지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기성세대 노후비용 대느라 後세대 등이 휜다
많은 전문가들이 세대간 불평등을 우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40, 50대 현 기성세대 부양에 들어가는 부담이 워낙 충격적 수준으로 급증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5년 현재 인구구조에서는 16~64세 생산가능인구 7.9명이 65세 이상 노인 1명을 부양하면 되지만 2030년에는 2.7명, 2050년에는 1.4명이 노인 1명을 책임져야 한다.
부양 받을 사람은 늘고, 부양할 능력이 되는 근로세대는 급격히 감소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만 보면 후세대의 부양부담은 더 심각하다. 2005년에는 가입자 12명이 노인 수급자 1명을 책임지는 구조이지만, 2030년에는 1.5명, 2050년에는 1.1명이 노인 수급자 1명의 연금을 책임져야 한다.
들어올 보험료 수입에 비해 보험금 지급을 비대하게 설계했기 때문이다. 연금 적립금이 소진되는 2047년 이후에도 연금제도를 유지하려면, 가입자들은 소득의 30% 이상을 보험료로 납부해야 한다.
나라의 살림살이도 갈수록 노인에게만 집중되고 있다. 조세연구원에 따르면 국방비와 경제ㆍ복지예산 등을 모두 포함한 전체 공공지출가운데 그 혜택이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돌아가는 액수는 2004년 13%에서 2020년 30%, 2030년 40%, 2040년 56%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로 인해 현재 25% 수준인 국민부담률(조세+사회보장기여금/국내총생산)은 2050년 40%대에 육박하게 된다. 근로세대의 부담이 급증하는 것이다. 조세연구원 최준욱 연구위원은 “50여년 이후에는 1인당 국민소득과 노인 1인당 공공지출이 비슷해진다”며 “이는 64세 이하 이하인 사람의 소비여력이 노인의 소비보다 적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환란세대의 사고처리비용도 후대가 감당
현세대의 ‘사고 처리비용’도 고스란히 후세대에 전가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공적자금 상환이다. 상환액은 ‘비전2030’에서 향후 25년간 제시한 재원 400조원의 거의 절반인 168조원. 정부는 2003년 공적자금 상환계획에서 상환부담의 75%를 외환위기와 상관없는 30대 이하 세대로 돌렸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50~60대는 5.6%, 40대는 20%만 책임지면 된다. 반면 30대 30%, 20대 26%, 10대 13%의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부모세대의 사고수습을 자식이 성장해서까지 갚아야 하는 셈이다. 후세대의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후세대 소득이 감소하는 것 또한 갈등의 기폭제이다.
강성노조의 인위적 장벽이 기업의 원활한 세대교체를 막고 있다. 이로 인해 20대의 실업률(2분기 기준)은 2002년 6.3%, 2003년 7.4%, 2005년 7.6% 등으로 상승하고 있다. 곳간을 채워서 물려주는 것은 고사하고 부양 청구서에다 빚 청구서, 여기에다 자식세대의 몫까지 요구하는 셈이다.
세대간 고통분담 룰 서둘러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개발시대 주력세대가 허리띠를 졸라매며 최소한 성장에 관한 한,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었지만 지금의 주력세대는 성장도, 그렇다고 뚜렷한 복지의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이다.
오히려 소수의 승자와 더 많은 패자로 양분되는 양극화의 고통만 대물림 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LG경제연구원 송태정 연구위원은 “투표권이 없다는 이유로, 후세대에 잿빛 미래를 안겨주는 지금의 고통분담 구조가 정당화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지금의 기성세대에 부담(증세, 연금개혁, 노동유연화 등)도 늘리면서 복지를 늘리든, 아니면 부담은 늘리되 혜택은 후세대에 돌아가도록 하든, 세대간 고통분담의 논의가 본격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 해법은 없나
◆現세대가 허리띠 졸라매야
박 연구위원은 “과연 지금의 기성세대가 복지를 요구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성장동력이 저하되고, 밝지 못한 미래를 물려주게 됐다는 측면에서 보면 곳간을 더 퍼내는 식으로 현 세대의 복지를 늘리는 것은 염치 없는 짓”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히려 기성세대가 무엇을 희생하고 버려야 할지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전투적인 노조와 사회 각 부문의 평등에 대한 요구 분출, 잘못 설계된 연금, 비효율적인 교육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고령화로 인한 부작용이 집중될 미래 세대를 위해서는 지금 돈을 여기저기 쓸 게 아니라 오히려 나라의 곳간을 차곡차곡 더 채워야 한다”며 “지금 세대가 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건전한 재정을 물려주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증세와 관련해서는 “기성세대의 불투명한 세원 확보부터 선행돼야 하고, 그 다음이 증세이다”며 “이렇게 해서 세수가 늘어나면 미래세대에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국채와 공적자금 상환에 우선적으로 사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 연구위원은 정부가 내놓은 ‘비전2030’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도려내겠다는 문제의식이 부족하다”며 “‘재원이 이만큼 늘어나면 미래가 이만큼 좋아진다’식의 계획은 의미가 없다”고 비판했다.
◆ 비전2030의 복지는 투자개념
강 기획관은 “비전2030의 취지는 현세대가 부담할 것은 부담하고, 대신 국민 개개인의 인적자원 개발에 필요한 복지는 충분히 받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전2030이 현세대를 위한 복지 편향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그는 “비전2030에는 연금 개혁과 협력적 노사관계 구축, 능동적 세계화 등 제도적 측면에서 현세대가 희생해야 할 부분을 명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복지의 개념도 이제는 달리 생각해야 한다”며 “기존의 시혜적 복지는 일회성이지만, 비전2030에서 제기하는 복지는 성장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의 개념”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는 인적자원, 즉 사람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성장도 어렵다”며 “보육서비스와 의료, 직업훈련 등에 대한 복지투자는 인적자본의 양과 질을 높이려는 지식정보화 사회의 성장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강 기획관은 이어 “경제분야 지출을 줄이고 복지분야를 늘리겠다는 것은 정부가 경제성장을 도외시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며 “앞으로 경제개발의 역할은 시장에서 이뤄지도록 넘겨주고 정부는 사회적 투자를 통해 간접지원해주는 선진국형으로 바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증세와 관련해 그는 “비전2030은 우리의 미래를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자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라며 “어떤 전략, 어떤 목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재원소요가 달라질 수 있고 어떤 방식으로 조달하느냐에 따라서도 재원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 30代는 부동산·주식 등 ‘자산’서도 손해
저출산ㆍ고령화로 노년인구 비대형 인구구조로 급변하면서 부동산과 주식 등 부의 세대간 선(善)순환 구조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 또한 높아지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인 은퇴를 시작하는 2010년 이후 이들의 은퇴 매물이 쇄도하면서 자산시장이 붕괴하거나 자산 수익률이 세대를 거치면서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경우 ‘부의 분배’ 측면에서도 숫자적으로 더 열세인 후세대는 현 기성세대보다 더 가난해질 수 있다는 얘기이다.
자산시장의 큰손, 40대가 줄어들면
전문가들이 2010년 이후 자산시장 붕괴와 수익률 저하를 우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산시장의 최대 수요 세대인 40대 인구 비중의 급감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2004년 말 현재 아파트 등을 포함한 우리나라 전체 건물의 34%(면적 기준)를 40대가 소유하고 있다. 이어 50대가 24%, 60대가 15%, 30대가 14% 등의 순이었다. 또 한국증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주식 보유 또한 40대 초반에 급증했다가 이후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40~44세가 1인 당 269만원, 45~49세는 232만원, 50~54세가 210만원 어치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후반과 30대 초반은 각각 201만원과 127만원으로 낮았다. 부동산과 주식 모두 40대가 가장 큰 손으로 시장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저출산과 고령화로 40대 인구의 비중은 2010년 전체 인구에서 19.0%(821만 명)로 정점에 달한 이후 계속 감소하게 된다. 국토개발원 김민철 선임연구원은 “40대 인구가 은퇴하면서 노후자금 마련을 위한 유동성 확보에 나설 경우 자산매물 급증으로 수익률 하락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자산붕괴란 참사 부를 수도
대신경제연구소 등 일각에서는 2010년 자산붕괴설도 제기하고 있다. 2010년부터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산아제한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현재 나이는 51~43세다. 이 연령대 인구는 714만 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5.2%를 차지하고 있다. 베이비 붐 시절에는 한 해 80만 명 이상씩 출생했지만, 이 시기가 지난 이후 70만 명대로 급감했다.
통계청의 2005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퇴직연령은 54세로, 베이비붐 세대는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은퇴를 하게 된다. 은퇴 매물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대신경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2010년 이전에 부동산 보유 절정시기가 마감되면서, 2010년이 되면 버블이 붕괴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철용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아직은 우리 국민들이 부동산을 유산의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자산시장이 붕괴할 가능성까지는 낮아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부동산 시장부터 수익률이 급격히 둔화할 가능성은 높다”고 말했다.
은퇴폭탄도 後세대가 맞는다
향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자산시장의 수익률이 하락할 경우 피해는 30대 이하 세대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베이비붐 세대가 내 놓는 매물은 주로 30대가 소화해주게 되는데, 정작 30대가 은퇴할 무렵에는 자신들의 매물을 소화해줄 현재 20대 세대의 숫자적 열세로 손해 보는 자산 매각이 불가피하다는 것. 2005년 현재 30대는 821만 명에 달하는 반면, 20대 인구는 733만 명으로 30대에 비해 90만 명이 더 적다.
전문가들은 2000년 이후 최근 집값 폭등은 세대간 부를 둘러싼 분배의 불평등한 구조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지적이다. 이 기간 집값 폭등은 베이비붐 세대가 40대로 접어들면서 중대형 평수와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촉발됐고, 이로 인해 내 집 마련에 나섰던 20~30대가 가장 큰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국토개발원 김민철 선임연구원은 “향후 자산시장의 주력 수요세력이 급감해도 성장률이 어느 정도 받쳐주면 수익률 급감은 피할 수 있다”며 “때문에 세대간 부의 분배의 불평등을 막으려면, 결국 지속가능성 성장력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 '세대간 균형' 다른 나라 해법은…
현세대의 문제점을 다음으로 넘기지 않고 세대간 분배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국가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 것인가는 세계적인 고민거리다. 중국 일본 영국 독일 미국 등 세계 주요 국가들도 20ㆍ30년 후 국가전략을 저마다 디자인해 놓고 정책추진에 역량을 모으고 있다.
각국의 미래구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중국 등 급격한 시장경제의 발달로 인해 빈부ㆍ지역간 격차가 커져 시름하고 있는 국가들은 복지와 분배를 중요시하는 장기전략을 마련했다. 반면 높은 세금과 확고한 복지기반을 갖춘 유럽 국가의 경우는 일정 부분 복지비용을 축소하고, 기업과 민간의 자율을 늘리는 방향으로 큰 구도를 잡고 있다.
중국은 ‘2020년 전면적 샤오캉(小康)국가 건설’을 내걸었다. 샤오캉 국가는 아주 부유하지는 않지만 의ㆍ식ㆍ주의 기본수요를 충족하고 전 국민이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뜻한다. 이를 위해 중국은 ▦제도개혁을 통한 성장의 질 개선 ▦지역간 균형발전 도모 등 분배와 동반성장에 중점을 둔 정책방향을 설정했다.
중국은 올해 초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소외계층과 빈민층으로 전락하고 있는 농민들을 위해 올해 재정지출을 지난 해보다 14% 늘린 3,397억 위안(약 41조원)으로 대폭 증액했다. 재정지출이 증가해 증세의 필요성이 커졌지만 고대 춘추시대부터 내려온 세금인 농업세를 2,600년만에 폐지했다. 농촌발전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수십년 앞서 장기비전을 수립해 차질 없이 추진해온 것이 중국이 눈부신 발전을 이루는 토대가 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1970년대에는 덩샤오핑이 ‘부유해질 수 있는 사람부터 먼저 부유해지라’는 선부론(先富論)과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인민만 배부르게 하면 된다’는 ‘흑묘백묘(黑猫白猫)’ 론을 앞세워 중국의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따라서 샤오캉 국가 건설은 부작용이 가시화하고 있는 선부론에서 균형과 분배를 우선시하는 ‘공부론(共富論)’으로 발전전략을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독일 등 일부 유럽국가들은 확고한 복지국가 정책에 수정을 가하는 방향으로 장기비전을 마련하고 있다. 단 한 명의 사회구성원이라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선진형 복지국가를 자랑하지만, 살인적인 세금과 과도한 정부지출, 높은 실업률의 그림자를 쉽게 물리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독일은 2003년 복지 축소와 친기업 정책마련을 위주로 한 ‘아젠다 2010’을 발표했다. 퇴직연금 수령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상향 조정하고, 의료보험에서도 환자 본인의 부담을 늘렸다.
이처럼 국가별로 처한 현실이 다른 만큼 장기비전의 방향도 정반대의 모습을 띄고 있다. 때문에 정부가 지난 달 31일 발표한 ‘비전2030’의 내용을 해외 특정국가의 모델과 비교해 단순히 방향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부가 장기비전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사회각계의 토론이 미흡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고, 정책 추진 과정에도 타격이 우려되고 있다. 한국처럼 2030비전을 발표한 일본은 고이즈미 총리를 단장으로 특별기구를 두고 각계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2년 동안의 작업을 거쳐 비전을 완성했다.
반면 한국의 경우 국민 대다수는 정부가 그러한 비전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깜짝쇼처럼 발표된 내용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정부의‘장기비전’ 발표가 세대간 갈등을 풀 해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 논란의 시작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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