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피아니스트 김선욱군이 세계 무대를 향해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김군은 지난해 클라라 하스킬 국제콩쿠르에서 최연소로 1위를 차지하며 주목받았던 신예. 힘과 기교, 열정을 두루 갖춘 그는 요즘 음악계에서 '괴물''천재'로 불린다.
그는 지난달 30일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린 독주회에서 2시간30분 동안, 스스로의 표현을 빌리면 '크로스 컨트리' 연주를 펼쳤다. 인터미션만 2차례.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C장조', 라흐마니노프의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브리튼의 '밤의 소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번' 등이 이어지는 동안 비오듯 땀을 쏟았다. "어쩔 수 없이 도중에 옷을 갈아입는데 빨래 짤 때처럼 물이 쏟아지던데요."
그러고도 앙코르곡으로 7분이 넘는 리스트의 '리골레토 패러프레이즈'를 택했다. "아쉬움 없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자는 생각으로 프로그램을 짰는데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청중들도 많이 힘들었을텐데, 두번째 휴식 후에도 여전히 객석이 꽉 차 있어 마음을 놓았죠."
이날 공연은 세종체임버홀 개관 기념 페스티벌 프로그램 중 유일하게 매진됐다. 그만큼 김군의 성장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는 "공연 시간이 기니까 '본전은 뽑겠지'하는 생각으로 많은 분들이 오신 것 같다"고 농담을 하면서도 쑥스러워 했다.
3세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중학교 때 한국음악콩쿠르 등 국내 유명 콩쿠르를 석권한 그는 중학교 졸업 후 곧장 대학에 진학,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3학년이다. 160이 넘는 IQ와 타고난 음악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그는 '천재'라는 수식어에 대해서는 고개를 흔든다. "전 절대 천재는 아니구요. 다만 특별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해요. 한 곳에 빠지면 끝까지 파고들어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그는 요즘 파고들고 있는 것은 러시아 피아니스트 그레고리 소콜로프의 음악 세계라고 소개했다.
'천재는 많지만 끝까지 천재로 남는 이는 그 중 1% 밖에 없다'는 김대진 예종 교수의 이야기를 가슴에 담아두고 있다는 그의 또 다른 꿈은 지휘자다. 초등학교 때 학교를 빼먹으면서까지 경매에 나온 정명훈의 지휘봉을 낙찰받은 적도 있다. "흰 종이에 '지휘 김선욱'이라고 쓰고, 나름대로 프로그램을 구성해 그 지휘봉을 흔들곤 했죠."
김군은 3일 리즈 국제콩쿠르에 참가하기 위해 영국으로 출국한다. 그는 "콩쿠르에 나가보면 얼마나 잘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깨닫게 될 뿐 아니라 콩쿠르를 준비하는 고통스런 시간을 통해 성숙할 수 있다"면서 "어느 위치까지 올라서기 전까지는 계속 콩쿠르에 도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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