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하워드 진-오만한 제국, 미국의 신화와 허울 벗기기' 미국이라는 열차의 방향에 불복종하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하워드 진-오만한 제국, 미국의 신화와 허울 벗기기' 미국이라는 열차의 방향에 불복종하라

입력
2006.09.02 00:00
0 0

데이비스 조이스 지음. 안종설 옮김. / 열대림 발행ㆍ1만6,800원

“세상은 이미 특정한 방향으로 달리고 있고,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그 위의 중립이나 방관은 부역(附逆)의 다른 이름이라며 의연히 당파성을 선택한 역사학자, 그 당파성의 저서들로 한 세대의 의식 전체를 바꾸고, 그들과 더불어 온 몸으로 세상의 지향에 저항해온 거인, 하워드 진(Howard Zinnㆍ84). 그의 거대한 삶과 사상을 평전 형식으로 정리한, 데이비스 조이스의 책 ‘하워드 진-오만한 제국, 미국의 신화와 허울 벗기기’가 출간됐다.

책은 진의 지난 생애를 4개의 결절로 나누어 소개한다.

뉴욕 변두리의 유대인 이주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가난 속에서 또 주류 학문의 세계 안에서 계급의식에 눈 떠가는 시기서부터 인종차별과 고루한 민족주의의 근거지였던 남부에서의 교수 시절, 보스턴대학으로 옮겨 반전과 민권의 학문적, 실천적 저항을 본격화하던 60년대 중반 이후, 그리고 그의 역저 ‘미국민중사’의 전후 이야기까지.

진의 삶과 정신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불복종’과 ‘당파성’이다. 불의의 권력에 대한 불복종이고, 그 권력에 짓눌린 자들과의 연대다. 저자 역시 진의 이 원칙에 주목한다.

-과거는 필요한 것을 모두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것 가운데 일부만 보여줄 뿐이다. (161쪽)

-객관적인 역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이해했으면 좋겠다.…역사란 언제나 이쪽이든 저쪽이든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고….(119쪽)

-나는 ‘객관적’인 글을 쓰기보다는 참여적인 글을 쓰고 싶었다.… 인종주의, 불의, 불평등, 전쟁 등에 대한 나의 분노는….(41쪽)

저자는 진이 자신을 태운 미국이라는 열차의 방향- 인종ㆍ성차별, 전쟁, 억압, 환경파괴 등- 에 맞서며 써낸 저서들의 감동적인 문장과 사회ㆍ역사적 맥락, 진의 개인사 등을 병치한다. 또 책에 대한 다양하고 또 상반되기까지 하는 반응과 책의 영향까지 쫀쫀하고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우리 시대에는 시간이 갈수록 거대한 악의 대량생산이 엄청나게 복잡한 노동의 분화를 요구한다.… 하지만 누구든 부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기계에 렌치를 집어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47쪽)

-몇몇 법률이 민주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든 법률에 복종해야 한다는 생각은 정부의 손에 백지수표를 쥐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시민으로서 우리의 임무는 법보다 양심을 앞세우는 것이며 지속적으로 법과 정의 사이의 간극을 메워가는 것이다.(140쪽)

-가장 추잡한 불의는 법의 위반이 아니라 법의 적용에 의해 비롯된다.(193쪽)

자신의 강의에 스스로 감동하는 그런 교수가 되고자 노력한 진은, 강단에서도 거리에서도, 스스로 감동하며 전 세계 소수자들을 감동시켰다. 그리고 지금도 미국이라는 불량 초강대국(Rogue Superpower)의 열차 위에서, 그 자신 고집스러운 낙관주의의 근거라 했던, “이름 모를 이들의 수많은 작은 행동들”과 함께 거침 없이 내달리고 있다.

그 열차가 정의의 궤도를 선택할 때까지, 결코 늙지 않을 이 시대의 정신은 미국 열차의 현재 궤도가 냉전시대의 그것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한다.

“미국의 군사화를 위해, 미국의 군인들이 해외에서 경험할 모험을 위해, 국내 국민들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공산주의가 테러리즘으로 대체되었을 뿐이다.”(319쪽)

이 책은, 저자의 겸손한 소개처럼, “(건강한) 전망을 현실로 바꾸어놓기 위한 한 인간의 노력에 대한 이야기”다. 책을 드는 순간, ‘달리는 기차’ 안의 우리는 진이 말한 ‘이름없는 수많은 작은 행동’의 스크럼 속에 서 있게 된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