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성 지음 / 사회평론 발행ㆍ1만2,000원
우익 성향의 단체 ‘선구회’가 해방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이 뽑은 가장 인기 있는 지도자로 조사된 이가 여운형(33%)이었다. 이승만(20%) 김구(17%) 박헌영(15%) 등 거물 정치인이 뒤를 이었 이관술(13%)이 5위를 차지했다. 김일성, 김규식 등이 2% 대에 머문 것을 볼 때, 이관술이 상당한 지명도와 무시 못할 정치력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지금 이관술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는 대체 어떤 인물일까.
소설가 안재성씨가 평전 형식을 빌어, 격동의 시대를 산 공산주의 혁명가 이관술(1902~1950)을 되살렸다. 울릉도에서 태어난 이관술은 서울 중동고와 일본 도쿄고등사범을 졸업하고 서울 동덕여고에서 역사, 지리 교사로 일했다. 그때만 해도 계몽적 민족주의자였던 그는 1929년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을 계기로 공산주의로 전환한다.
당시 많은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갔지만 민족주의 성향의 교사들이 미온적 태도를 보였고 이에 실망한 그는 항일운동의 무기로 공산주의를 받아들인다. 1930년대 들어 그는 본격적으로 공산주의 운동을 전개하는데 이때부터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두 차례의 감옥살이와 모진 고문, 10년에 가까운 수배생활을 경험한다.
해방 후 조선공산당 총무부장 겸 재정부장으로 활동하며 전성기를 맞았으나 1946년 ‘정판사 위폐사건’으로 최대 위기를 맞는다. 공산당이 위조지폐를 제조했다는 이 사건의 실체를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그는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한국전쟁 와중에 총살을 당한다.
책은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그의 일생을 연대순으로 기록하면서 일제 치하, 해방 직후의 그 모진 시기에 신념에 따라 살다 간 한 혁명가의 뜨거운 삶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료 대부분이 남북한에서 처형 혹은 숙청되고, 가족은 빨갱이라는 손가락질과 가난 속에서 고통스러워 한 것을 보면서 과연 신념 혹은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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