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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아내들/ '위험한 줄타기' 불륜이 아니라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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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아내들/ '위험한 줄타기' 불륜이 아니라 로맨스?

입력
2006.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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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강남에서 꽃가게를 운영하는 서모(42)씨는 자영업을 하는 남편과의 사이에 고1과 중2 두 자녀를 두고 있다. 그는 4년째 벤처회사 대표인 세 살 연하의 유부남과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다. 친구와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시작된 둘의 만남은 주변에 5쌍의 유부남ㆍ유부녀 커플을 맺어줄 정도로 유대가 깊다. 서씨도 처음엔 가정 밖에 모르는 남편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졌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대담해져 두 달 전부터는 현재의 내연남 외에 사채업을 하는 7세 연상의 재력가와도 사귀고 있다. 서씨는 남편에게서 안정감을, 두 내연남에게선 육체적 쾌락과 경제적 만족을 얻는 ‘위험한 외줄타기’를 지속하고 있다.

#2. 이혼남인 A씨는 얼마 전 “딸이 아빠를 닮지 않았다”는 주변 사람들 말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친자확인 DNA검사를 의뢰했다가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업체에서 한달 뒤 보내 온 감정서에는 ‘친자라고 입증할만한 유전적 근거가 없다’고 적혀 있었다. A씨는 딸이 자신의 자식이 아님을 인정 받는 ‘친생부인’ 소송에서 이긴 뒤, 눈물을 머금고 딸을 자신의 호적에서 파냈다. 딸이 태어난 지 20년 남짓 흐른 뒤였다. 그는 전처를 상대로 정신적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내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A씨는 “딸이 내 피붙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곤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며 “전처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갖고도 내 딸인 것처럼 속인 것을 생각하면 배신감에 몸이 떨린다”고 말했다.

#3. 두 자녀를 둔 가정주부 B씨. 그는 요즘 남편과 자녀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잠을 설치곤 한다. 2년 전 인터넷 동호회에서 만난 남성과 몰래 사귄 지 벌써 2년. 처음에는 무뚝뚝한 남편과 달리 자상하고 대화가 잘 통하는 점이 좋아 친구사이로 만났지만, 어느덧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갈수록 커져 가는 죄책감과 두려움 탓에 관계를 정리해야 겠다는 맘은 굴뚝 같았지만, 꼬박꼬박 기념일을 챙겨주는 자상한 남자친구와 헤어지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생각 다 못해 남자친구집과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이사를 고려 중이다. B씨는 “남편은 야근이 잦아 정서적으로 교류할 시간이 없는데다 나를 부엌데기 취급해 같이 있기만 해도 미칠 것 같다”면서 “비록 사회적으로 비난 받을 짓을 했지만, 내가 다른 여자들에 비해 바람기가 많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 1990년대를 풍미했던 탤런트 최진실의 CF 대사는 당시 남성들에겐 ‘애교’를 넘어 ‘절대 진리’였다. 전통적 여성상이 지고지순의 선으로 여겨지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들의 권리가 신장되고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프로는 아름답다’라는 문구로 대표되는 커리어우먼의 당당한 이미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한 남자만을 사랑하는 순애보’, ‘자식을 잘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잘하는 현모양처’, ‘어려선 부모, 결혼해선 남편, 늙어선 자식을 따르는 여인’은 이제 숙맥 취급을 받는 시대가 됐다. 현대 여성들은 ‘한 남자의 아내’, ‘한 자녀의 어머니’로만 남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매사에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고, 단호하게 행동하는 이 시대의 ‘똑순이’들은 사랑에서도 솔직하고 당당하다. 그들에게는 외도가 ‘불륜’이 아니라 ‘로맨스’일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양다리’ 기혼 여성은 이제 흔해빠진 풍경이 됐다. 재혼 전문업체 ‘온리유’가 최근 재혼 희망 남녀 512명에게 결혼 생활 중 이성교제 여부를 물었더니 여성의 48.6%가 ‘이성교제 경험이 있다’고 밝혀 남성(51.3%)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또 한국성과학연구소가 지난해 5대 도시에 거주하는 성인여성 1,000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남편이 아닌 남성과 성관계를 맺은 비율이 7.9%에 달했다. 연령별로는 40~44세의 혼외정사 비율이 31.6%로 가장 많았지만, 아직 신혼이나 다름 없는 29세 이하도 7.6%나 됐다. 이윤수 소장은 “최근 몇 년 새 중년 남성들의 외도 대상이 유흥업소 여성에서 유부녀나 독신여성으로 급격히 옮겨가고 있다”면서 “기혼 여성들의 외도가 늘어나고 있음을 역으로 추산해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DNA검사 업체에는 친자여부를 확인하려는 고객들의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대형업체인 I사의 경우 DNA검사 의뢰 건수는 2001년 95건에 불과했으나, 2005년엔 950건으로 5년 새 10배나 늘어났다. 의뢰인 중 남성이 60% 가량 되며, 대부분 아내의 외도를 의심한 경우라는 게 업체측의 설명이다. 실제 자신과 자녀의 DNA가 일치하지 않는 비율이 2001년 10%(10건)에서 2005년엔 20%에 달했다. 아내의 혼외 정사로 낳은 자식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인 셈이다.

친자확인을 위한 DNA검사 남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DNA검사는 오류 가능성이 있는데다 의뢰 사실 자체만으로도 부부간의 신뢰를 깰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조경애 상담위원은 “자녀가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차라리 모르는 게 낳을 번 했다’고 하소연하는 남성도 많다”면서 “DNA검사는 법적 절차를 밟기 위한 최소 요건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 여성들은 자신의 외도 탓에 이혼을 당하더라도 당당히 권리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불륜을 저지른 여성도 위자료와는 별개로 재산분할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남성들은 재산분할에 따른 경제적 문제와 육아부담 때문에 이혼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온리유’가 이혼남 200명에게 ‘이혼 결심의 발단이 된 이유’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배우자 부정이 1위(29.2%)였지만, ‘실제 이혼 사유’에서는 배우자 부정(20.2%)이 성격 차이(41.9%), 가치관 차이(21.8%)에 이어 3위에 머물렀다.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되면 이혼을 심각하게 고민하면서도 정작 실행에 옮기는 이들은 많지 않다는 얘기다.

18년간 이혼소송을 맡아 온 김삼화 변호사는 “자신의 외도는 숨긴 채 남편의 폭행과 경제적 문제 등 다른 이유를 들어 이혼을 요구하는 등 재산분할 청구권을 악용하는 여성도 있다”며 “반면 남성들은 이혼 상담을 하러 왔다가도 자녀들이 맘에 걸려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고 달라진 풍속도를 전했다.

■ 간통제 폐지 딜레마

국가 공권력이 개인의 애정문제에 개입하는 게 과연 타당한가?

간통죄 존폐 문제는 아직까지 매듭지어지지 않은 우리 사회의 화두이다. 헌법재판소는 2001년 “간통죄는 필요하다”며 간통죄 처벌 규정인 형법 241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1990년과 93년에 이은 세 번째 합헌 결정이다. 하지만 헌재는 “입법자는 우리 법의식의 면밀한 검토를 통해 앞으로 간통죄 폐지 여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요구된다”며 불씨를 살려놓았다. 이에 화답하듯 지난해 11월 열린우리당 염동연 의원 등은 간통죄 조항을 삭제하기 위한 형법 개정안을 제출,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사법부 내부에서도 변화의 기류가 뚜렷하다. 대법원은 13명의 대법관 중 8명이 ‘간통죄 폐지’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헌재가 2001년 위헌 결정을 내릴 당시 9명의 재판관 중 무려 8명이 ‘간통죄 존속’의 합헌의견을 낸 것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변화이다. 특히 지난 6월 대법관에 새로 임명된 5명 중 안대희 대법관 등 4명이 인사청문회에서 “간통죄 폐지를 검토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낸 점도 눈길을 끈다. 헌재 역시 재판관들의 임기만료로 ‘세대교체’가 이뤄질 경우 언제든 결론이 뒤바뀔 수 있다.

실제 사법당국의 처벌의지도 갈수록 약화하는 모습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04년 전국에서 9,911건의 간통사건이 접수됐으나, 이 중 81.9%인 8,126건이 불기소처분을 받아 흐지부지 됐다. 특히 53.7% (5,331건)는 중간에 배우자가 고소를 취하했고, 간통죄로 구속기소된 경우는 5.7% (569건)에 불과했다.

간통죄 폐지론자들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강조한다. 혼인의 순결과 부부간 애정문제는 법이 개입할 성질이 아니라 개인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는 것이다. 염 의원은 형법 개정안에서 “사회적 경제적으로 열악한 여성이 남자 배우자를 고소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남성에 비해 가혹한 법적용을 감수해야 하는 등 양성평등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2001년 헌재 결정에서 당시 권 성 재판관은 “간통에 대한 형사처벌은 애정과 신의가 깨어진 상대 배우자만을 사랑하도록 국가가 성적 예속을 강제하는 것”이라며 위헌의견을 냈다.

반면 존속론자들은 선량한 성도덕과 일부일처주의를 보호하고 이혼 등 사회적 해악을 예방하기 위해 간통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여성보호를 위한 현실론도 제기된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조경애 상담위원은 “많은 여성들이 ‘(불륜)현장을 잡지 못하면 처벌할 수 없느냐’고 절박하게 호소해온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여성들의 외도가 늘어나는 게 사실이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남성들의 간통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부정한 남편의 상습구타와 재산 빼돌리기 등이 자행되는 현실을 생각하면 간통죄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무기인 점도 간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속타는 남편들

한국 사회에서 ‘외도’는 ‘남성들의 일탈행위’와 동의어로 여겨졌다. 불과 수년 전까지도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외도에는 남녀 노소가 따로 없는 시대가 됐다. 오히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 명예퇴직 등으로 남성들의 사회적 입지가 크게 좁아지면서 남편의 외도는 점차 줄어드는 반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향상된 아내들의 외도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외도의 대상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중년 남성들의 외도 상대는 주로 유흥업소 종업원이나 직장의 부하 여직원 정도에 국한됐다. 하지만 최근엔 남녀를 불문하고 유부남과 유부녀의 불륜이 주류를 이룬다. 서울 강남의 중년 여성들 사이에선 ‘가정을 지키면서 안전하게 중년의 외로움을 달래는 데는 안정된 기반을 가진 유부남이 최고’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그러나 한 때의 호기심과 쾌락은 자신은 물론 남편과 자녀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가정을 파탄의 소용돌이로 몰아 넣는다. 아무리 은밀하게 이뤄지는 불륜이라도 꼬리가 길면 잡히기 마련이고, 이에 따른 배우자와 자녀들의 배신감과 분노는 종종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본보 취재팀은 아내의 외도로 고민하다 남성 고민상담센터 ‘남성의 전화’를 찾아온 중년 남성들의 상처 받은 마음과 고충을 들어봤다.

아내의 모럴해저드

개인사업을 하는 L모(42)씨는 지난해 자신이 사는 아파트 계단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밖에 나갔다가 계단에서 부둥켜 않고 있는 남녀의 그림자를 언뜻 본 것이다. 무심코 지나치려다 혹시나 해서 살펴봤더니 맥주를 사러 나간 아내가 아래층 남자와 부둥켜 안은 채 키스를 하고 있었다. 깜짝 놀라 아내를 추궁하던 L씨는 더욱 엄청난 사실을 알아냈다. 아내는 2년 전부터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된 이 남자와 관계를 맺어 왔고, 1년 전에는 더 편안하게 만나기 위해 남자가 아예 L씨 아파트 아래 층으로 이사를 온 것이었다. 아내는 L씨가 출근한 뒤에 자연스럽게 아래 윗집을 오가며 밀회를 즐겨왔다고 털어놓았다. L씨는 현재 아내와 별거 상태에서 이혼수속을 밟고 있다.

가정 폭력으로 이어져

평범한 회사원인 G모(41)씨는 요즘 초등학교 5학년과 3학년인 두 자녀를 뒷바라지 하느라 직장 생활을 제대로 못한다.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던 G씨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지난해 가을. 집안 살림만 하던 아내가 ‘몸짱 신드롬’에 자극 받아 운동을 시작했고, 헬스클럽에서 연하의 남자를 사귄 것이다. G씨는 자신이 출장 갔을 때 아내가 외박한 사실을 알게 됐고, 그 때부터 아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내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불륜 사실을 실토하라”며 폭력을 휘둘렀고, 참다 못한 아내는 결국 가출했다. 아내는 현재 연하의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다. G씨는 처음에는 불륜을 저지른 아내를 증오하며 이혼을 결심했으나, 1년 가까이 홀로 자녀를 키우면서 마음이 바뀌고 있다. G씨는 지금이라도 아내가 연하남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돌아오면 받아줄 생각이다.

살인 자살 등 극단적 충동까지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N모(51)씨는 지방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40대 후반)와 주말 부부다. N씨는 얼마 전 아내의 휴대폰 문자메시지와 이메일을 몰래 열어봤다가 불륜 사실을 알게 됐다. 아내의 외도는 벌써 두 번째다. 몇 년 전에도 직장 상사와 불륜을 저질러 아내 근무지를 바꾸는 등 소동을 벌인 적이 있다. N씨는 최근까지도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특허를 신청하는 등 의욕적으로 일을 해왔으나, 지금은 사업을 접은 채 몰래 지방을 오르내리며 아내의 불륜 현장을 잡는데 혈안이 돼 있다. 아내와 내연남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찬 그의 마음 속에는 이미 시나리오가 그려져 있다. 사회정의를 위해서도 불륜을 저지른 아내와 관계 남성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후 자신도 생애를 마감할 계획이었다. N씨의 이런 위험한 생각은 상담 치료를 거치면서 가라앉았지만, 아내의 불륜이 재발할 경우 언제든지 현실화할 잠재성을 갖고 있다.

한때 실수가 가정파탄의 수렁으로

대형식당을 운영하는 K모(42)씨는 세상에 별로 부러울 것이 없는 가장이었다. 아내에게 매달 약 600만~700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주었고, 아내 역시 자녀교육과 남편 뒷바라지에 열심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아내의 외도 사실이 우연히 발각되면서 K씨 가정의 행복은 산산조각이 났다. K씨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사업을 팽개친 채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고, 부인도 주변의 눈총과 남편과의 관계 악화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두 자녀 역시 학교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바람에 상위권이던 성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변에서 ‘잉꼬 부부’ 소리를 듣던 K씨 부부는 현재 각방을 쓰면서도 자녀들 때문에 이혼 결심을 하지 못한 채 ‘무늬만 부부’ 생활을 하고 있다.

기획취재팀= 고재학(팀장)ㆍ송영웅ㆍ이태희ㆍ안형영기자, 정치부= 신재연기자, 사진부= 손용석기자 news@hk.co.kr

■ 원인과 대책/ 전문가 진단

▦ 현택수 고려대 인문대 사회학과 교수

미국 유럽연합 등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역시 경제 수준이 올라가면서 주부들의 개인주의 성향이나 정체성을 찾으려는 욕구가 강해졌다. 전통적인 가족구조에서의 부부간 신뢰도가 약화했고, 가족의 기능 자체가 변해가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요즘의 기혼 여성들은 가족에 대한 의무감보다는 ‘나대로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생물학적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키면서 기존 도덕과 대치되는 나름대로의 ‘개인적 도덕률’을 만들어 자신의 욕구와 행동을 합리화하고 새로운 자아 정체성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물론 ‘허울뿐인 가족’이 증가하는 것은 사회 기초집단인 가정이 와해된다는 의미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윤리적 법적 잣대를 들이댄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주부들이 아무 의지 없이 행동하는 게 아니며 나름대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종의 과도기이다. 사회는 개인의 권리를 옹호해주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지만, 외도를 즐기라고 장려할 수는 없다. 이런 과도기의 사회적 충격을 흡수할 ‘완충지대’가 만들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법적 강제를 완화해주면서 부부관계나 가정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사회적 담론이 필요하다. 외국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부부간의 성(性)생활도 외도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부부간 정신적 공간도 메워야 하지만 육체적 공간을 메우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부부간에 성적인 문제를 얘기하고 고쳐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김덕일 결혼과 가족관계 연구소 소장

기혼 여성들의 외도는 그들 특유의 욕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정서적인 관계(친밀감, 공감적 대화)의 욕구가 강한 편이며, 사회적 경제적 안정감(학력, 직업, 수입 등)에 대한 욕구도 강하다. 남성들은 결혼을 위해 일시적으로 여성과의 정서적 관계 유지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남성들의 정서적 관계에 관한 능력을 과대평가하기 쉽다. 그러나 남성들이 일단 결혼을 하면 본래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며, 여성들은 남편에게 실망해 충족되지 않은 정서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남편에 대한 자신의 노력이 실패할 경우엔 외도를 해도 죄책감을 덜 느끼게 된다.

과거에도 여성들의 외도는 있었다. 그러나 자녀 교육, 종교생활, 사회봉사활동 등 도덕적 비난을 받지 않는 종류의 외도였다. 반면 요즘은 사교육의 비중이 커지면서 자녀와의 관계를 통해 정서적 욕구를 충족하기 어렵게 됐다. 또 사회경제 활동이 확대되면서 쉽게 이성을 만날 수 있는 여건이 됐고 시간적 여유도 갖게 됐다. 여성의 외도를 막으려면 부부간 대화가 중요하지만, 사실 더욱 필요한 것은 ‘대화의 기술’이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들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싸우게 되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서적 관계 능력이 부족한 경우 ‘대화의 기술’만 잘 배우고 익혀도 부부관계를 원만히 하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다.

기획취재팀= 고재학(팀장)ㆍ송영웅ㆍ이태희ㆍ안형영기자, 정치부= 신재연기자, 사진부= 손용석기자 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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