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도 슬프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위안이 될까, 더 큰 슬픔이 될까.
절망과 고독으로 제 등을 짐승에게 맡긴 두 남자의 이야기가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두 편의 소설로 나왔다. 하나는 끝내 소통하지 못한 두 연인의 애통한 러브스토리고, 다른 하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시민의 일상을 그린 블랙코미디다. 인간에 대한 염오(厭惡)가 짐승의 등을 빌리고 싶도록 만드는 경우를 흔치 않게 보지만, 한 마디의 대사도 없는 과묵한 주인공들이 가여운 인간들과 빚어내는 쓸쓸한 풍경은 책장을 덮고도 오래도록 애처롭고 눈물겹다
▲ 바벨의 개 / 캐롤린 파크허스트 지음ㆍ공경희 옮김 / 한스미디어 발행ㆍ1만원
캐롤린 파크허스트의 첫 소설 ‘바벨의 개’는 사랑하고도 소통하지 못한 자들의 고독과 슬픔을 개와 인간 사이의 언어 단절로 환유한다. 어느 수요일 오후. 학교에서 돌아온 언어학 교수 폴은 아내 렉시가 사과나무에 올라갔다 추락사한 모습을 본다. 경찰은 단순 사고사로 사건을 종결하지만, 뒤바뀐 서재의 책 배열 등 이상한 단서들이 폴의 눈에 포착된다. 목격자는 애완견 로렐라이뿐. 절망적이지만, 모든 것을 지켜본 로렐라이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소설은 세상의 질시를 무릅쓰고 로렐라이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폴이 만남부터 최후까지 렉시와 함께한 나날들을 복기하며 그녀의 진짜 사인을 추적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완벽한 무(無)로의 귀환. 어떤 방법으로도 복구할 수 없는 그녀의 현존에 절망한 그가 마침내 최후의 그날을 완벽히 재구성했을 때, 그러나 그곳엔 자살이라는, 사랑하는 이로부터의 가장 잔혹한 배신이 있었다. 그 날 아침 “그녀는 잠에서 깨어 옷을 갈아입었고, 아침식사를 하면서 내게 사과했고, 출근하는 나에게 키스했다. 그날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걸 알면서 그렇게 했다.”(335~336쪽)
그 배신은 그토록 사랑하고도 내면의 소용돌이를 몰랐던 잔인한 대가다. 그리하여 사랑의 행로를 되짚으며 폴이 직면한 진실은 어쩌면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 언어따윈 필요 없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렉시의 죽음을 지켜본 로렐라이의 슬픈 낑낑거림은 천 마디의 말보다 더 많이 폴의 아픔을 위로하고, 이제 폴과 로렐라이는 공유한 아픔의 힘으로 다시 생을 산다. 출렁이는 슬픔으로 몇 번씩 깊은 숨을 들이마셔야 하는 이 소설이 “그녀를 본모습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 내가 우리 둘에게 줄 수 있는 선물임을”이라는 문장으로 끝날 때, 독자는 기필코 가슴이 아릴 것이다.
▲ 펭귄의 우울 / 안드레이 쿠르코프 지음ㆍ이나미 이영준 옮김 / 솔 발행ㆍ9,500원
기발한 상상력과 추리소설의 치밀한 형식이 책장을 놓지 못하게 할 만큼 놀라운 흡인력을 발휘하는 ‘펭귄의 우울’은,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가 세계 문학사에 깊은 날인을 새겨넣은 19세기 이후 그 명맥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러시아 문학에 부흥의 복음을 알린 소설로 평가받는다.
재정 고갈을 이유로 동물들을 방출한 동물원에서 펭귄 ‘미샤’를 분양받아 단둘이 살아가는 ‘무명’의 소설가 빅토르는 어느날 유력 신문으로부터 살아있는 사람들의 조문을 미리 써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그러나 자신이 조문을 쓰는 사람들이 하나씩 피살되면서 자신이 계획적으로 죽음을 경영하는 ‘사회방역 소탕세력’에 가담하게 됐음을 알게 되고, 빅토르는 유일한 벗 펭귄과 함께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은밀한 투쟁을 펼친다.
소설은 남극에 대한 향수로 우울증에 걸린 펭귄과 고독한 빅토르의 교감을 씨줄로,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자본주의의 거센 격랑에 휩쓸린 우크라이나의 부패와 난맥상을 날줄로 엮으며 독특한 희비극의 정조를 소설 전반에 발산한다. 죽음을 부르는 조문 작가와 흰색과 검은색의 몸이 조문객 그 자체인 펭귄 사이의 가족애는 놀라운 반전과 함께 싸한 페이소스와 쓴웃음을 안겨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내 하나의 질문을 건넨다. 내가 정말 외로울 때 나를 위로해주는 것은 무엇이었던가.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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