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6차 국제천문연행 총회에 다녀와서 -
늘 그 자리에 그렇게 있었음에도 우주는 수도 없이 바뀌고 변해 왔다. 우주는 지구가 중심이었다가 태양이 중심이 되었는가 하면, 언제나 같은 모습이다가 팽창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아예 중심이 없는 가속 팽창하는 공간이라고 믿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인류의 지적 수준에 따라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알게 되는 것이 우주다.
망원경과 관측기기 등 과학문명의 급속한 발전으로 보다 깊이, 보다 자세히 볼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발견이 거듭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사실의 수정이 불가피한 경우가 속출하여 매년 교과서를 새로 써 야할 형편이다. 8월24일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제26차 국제천문연맹(IAU) 총회에서 채택한 행성에 대한 정의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최근 행성에 대한 논의는 해왕성 밖에서 태양을 공전하는 천체들이 발견되면서 불거졌다. 이들을 행성에 포함시켜야 할 지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IAU는 행성천문학 분야는 물론 과학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7명으로 행성정의위원회를 구성하였다. 행성에 대한 정의는 과학적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문제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위원회에서 합의된 권고안을 바탕으로 만든 행성정의안이 8월15일 공개되었다. 이 안은 태양을 공전하는 직경 800km 이상의 구형 천체를 행성이라고 한다는 것인데, 이는 9개의 기존 행성 외에 세레스와 카론 그리고 제나라고 알려진 2003 UB313이 포함되어 행성이 12개로 늘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이 안의 문제점은 앞으로 수많은 새로운 행성들이 발견돼 혼란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8월18일과 22일에 열린 토론회에서 이러한 의견이 대세를 이룸에 따라 두 가지 수정안이 만들어졌다. 제1안은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충분한 질량을 가져 정역학적 평형 상태 즉 구형을 이루고, 자신의 공전궤도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행성이라 하고 ▦구형이고 태양을 공전하나 자신의 궤도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천체를 왜소행성이라고 하며 ▦이밖에 태양을 공전하는 물체를 작은 태양계물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제2안은 위의 내용과 모두 동일하지만, 제1안의 행성이라는 용어 대신에 고전적행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것이다. 두 안이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제1안이 채택되면 세레스와 카론 그리고 2003 UB313은 물론 명왕성마저도 행성에서 제외되는 반면, 제2안이 채택되면 명왕성을 포함해 모두 12개의 천체가 행성이 되며 앞으로 수많은 새로운 행성이 탄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총회에는 약 600여명의 IAU 회원이 참여하여 열띤 논쟁을 벌였다. 논의의 초점은 당연히 행성과 왜소행성으로 구분할 것인가, 아니면 행성을 고전행성과 왜소행성으로 나눌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미국 천문학자들은 당연히 그들이 발견한 명왕성과 카론 등을 행성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을 강하게 표출했다. 투표에서는 제1안이 압도적인 표 차이로 채택되었다.
총회가 끝나고 삼삼오오 모여 웅성대는 미국 천문학자들의 모습에서 서운한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사고의 지평을 넓혀 인류에 공헌해온 것을 보람으로 느끼는 천문학자들이지만 전세계의 모든 교과서들이 다시 씌어져야 하는 등 실생활에 이만큼 큰 파급효과를 미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김호일·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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