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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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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길

입력
2006.09.0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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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부동산중개업소가 많아지는 건 그 일대 재개발이 활발해질, 한 마디로 땅값이 큰 폭으로 오를 징표라 한다. 지난해부터 우리 동네에도 부동산중개업소가 부쩍 늘었다. 저마다 유리벽이나 문짝에 매매니 전월세 임대니, 의뢰 받은 부동산 목록을 한가득 붙이고 있다.

이 동네에 발을 들인 지 20년인데, 이미 그 전부터 재개발 소문이 자자했다 한다. 그 소문이 이제 현실화하려나 보다. 이제나저제나 하며 낡은 집 하나를 붙들고 산 원주민들을 생각하면 잘된 일이지만, 땅값이 오르면 임대료도 오를 테니 나로선 달갑지 않다.

폴란드계 러시아 사람 세로세프스키의 대한제국 견문록 '코레야 1903년 가을'에 이런 대목이 있다. '한국의 크고 작은 마을을 볼 때마다, 그들의 집이란 것이 잠잘 방과 부엌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떠돌이 민중의 임시 거처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단지 집의 구조나 규모만으로 받은 인상은 아닐 것이다.

선조들의 삶을 생각하니 가슴 아프다. 그래서 그 후손인 우리가 집에 포한이라도 진 듯 사나보다. 그런데 정작 거처가 버젓해진 오늘날, 보다 넓고 호사스런 집을 향하여, 1903년보다 더 떠돌며 사는 것 같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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