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오모리현의 오오마해(海)에서 외줄로 참치를 잡는 어부들은 무게 몇 백kg의 참치가 눈앞에 아른거려서 잠을 못 이룰 정도라 한다. 마을 대부분의 고깃배들은 소소한 오징어잡이를 생업으로 하여 소박하고 안정된 생활을 택하지만, 한 번이라도 참치를 본 어부라면 ‘내게도 한 번쯤 걸려주지 않을까’는 희망을 쉬 버릴 수가 없단다.
이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는데, 작은 어선 정도는 한 방에 부숴버릴 것 같은 거친 파도를 뚫고 참치 잡이를 나가는 어부들의 집념이 놀라울 뿐이었다.
환갑을 훌쩍 넘긴 노 어부는 함께 고깃배를 타던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뜨자, 그녀가 두르던 스카프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배를 탄다. 아버지를 따라 청년 시절부터 낚아 본 참치가 몇 마리쯤 될까. 나이 든 어부의 손끝이 500kg의 참치와 줄 하나를 두고 밀고 당기던 느낌이 생생하다.
에너지가 몽땅 바닥나고, ‘오늘도 허탕인가보다’할 즈음 눈앞에서 참치 떼가 물위로 탕탕 튕겨 오르면 신기루가 따로 없다. 인간은 상상할 수도 없는, 그 끝이 무한한 바다는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요소들을 손에 쥐고 하나씩 천천히 주다 말다 한다.
▲ 성게 알
피서 철이 막 끝난 강릉에 다녀왔다. 해수욕장 근처의 슈퍼마켓에는 아직도 노란 튜브가 걸려 있고, 옆 노래방에는 번쩍이는 간판이 요란하지만 가을 공기가 섞인 한 줄기 바람에 바닷가는 쓸쓸하기만 하다.
수조에 남아 있는 성게를 먹으러 횟집에 들어서니 인상 좋으신 주인 아주머님이 서울 손님이라고 반겨 주신다. 자잘한 생선들을 회로 좀 썰고, 막 잡은 성게를 딱 갈라 접시에 담으니 벌써 상이 화려하다. 티스푼으로 오렌지색 성게 알을 단 번에 떠서 입에 넣었다. 그 폭신한 감촉이 혀와 입천장에 눈 녹듯이 닿아 없어진다. 우유에 촉촉하게 적신 카스텔라 같기도, 단단히 거품을 친 생크림 같기도 하다. 그 형체가 없어진 다음에는 풍미만 남게 되는데, 짠맛과 단맛이 절묘하게 어울려 입안은 온통 ‘바다’가 된다.
성게 알은 정말 생크림처럼 부드러운 특징 때문에 먼 거리로 운송하기가 까다로운 해산물이다. 형체가 금새 망가지게 되므로 박스 포장 시에는 백반 등의 힘을 빌어 모양을 유지시킬 수밖에 없다. 때로 서울의 어느 초밥 집에서 성게 알을 먹으면 약간의 소독내가 난다고 느낄 수 있는데, 인체에 해롭지 않을 정도로 소량의 약품처리를 했기 때문이다. 산지에서 막 잡아 갈라 먹는 성게 알은 그만큼 불순물이 없고, 그래서 온전히 바다 맛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해산물을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젓갈로 만들어 두는 것인데, 성게 알 역시 젓갈로 먹는다. 시중에 제품으로 판매되는 것도 있고, 얼마 전 친정어머니가 지인에게 선물로 받은 성게알을 좀 덜어 주셨는데 아무튼 오묘한 맛이다. 생물보다 짭짤해서 티스푼으로 퍼먹기는 그렇지만, 따끈한 밥 위에 얹어 먹기에 그만이다.
가을이라고 알토란만한 감자가 맛있어 보이기에 한 망을 샀는데, 몇 알을 다시마 한 장과 넣고 밥을 지으니 밥이 촉촉하다. 한 그릇 막 퍼서 그 위에 성게알젓을 올려 김으로 싸 먹으면 그 맛의 어울림이 완벽하다. 단맛이 나는 따끈한 쌀밥에 짭짤하면서 미세하게 쌉싸래한 끝 맛이 도는 성게 알이 특제 소스처럼 스며들어 하나가 된다. 여기에 입 안을 산뜻하게 해주는 바삭한 김 한 장을 더해 마무리하면 바다가 입 안에 가득 찬다.
▲ 연어
본인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니까 덩달아 먹게 되는 메뉴들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참치나 연어, 장어와 같은 기름진 생선들이 그 예다. 결혼 전에는 거의 입에도 안 대고 살았는데, 남편이 좋아해서 종종 준비하게 되는 메뉴다.
물론, 참치나 연어를 생물로 먹기에는 여건이 안 맞아서 냉동으로 나온 제품을 구해 둔다. 참치는 냉동이더라도 붉은 살이 선명하고 살결이 고운 것으로 고르려 최대한 노력을 하는데, 팬에 통째로 살짝 구운 다음 1cm가 못 되게 썰어서 무 갈은 것과 간장, 맛술, 가다랭이 국물, 라임 섞은 소스를 뿌려 먹으면 맛있다. 부부가 나란히 앉아 술 한 잔 기울이게 만드는 마법의 메뉴다.
입맛이 없을 때에는 양상추와 아삭하게 먹을 수 있는 연어를 ‘에피타이저(appetizer;전채요리)’로 준비한다. 느끼한 연어의 맛을 잘 눌러줄 수 있는, 새콤한 소스를 만드는 것이 포인트. ‘사우어 크림(sour cream)’이라고 불리는 발효 유제품이나 떠먹는 흰 요거트를 준비하고, 여기에 마요네즈와 다진 양파, 다진 피클을 썰어 넣어 완성하면 된다. 깨끗이 씻은 양 상추에 약간의 단 맛을 주는 땅콩버터를 점 찍 듯이 아주 조금만 묻히고, 새콤 소스를 넉넉히 바른 다음 연어를 넣고 말아서 먹는다.
공상 만화를 보면, 땅따먹기에 지친 인간들이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이야기가 종종 있다. 해저 도시가 등장하고, 우리와 다르게 생긴 또 다른 문화적 생명체들이 사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허무맹랑하지만, 그만큼 저 깊은 바다 속은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 아직도 많다는 얘기가 아닐까. 물과 소금과 에너지와 셀 수 없는 먹거리를 품고서 인간들을 지켜보고 있는 바다. 그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통배 띄운 낚시꾼이라도 따라 나서서 나는 꼭 한번 들어보고 싶다.
EBS 요리쿡 사이쿡 진행자 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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