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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박물관展 "미술? 짜고치는 고스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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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박물관展 "미술? 짜고치는 고스톱이야"

입력
2006.09.0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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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별 게 다 있네. 이것도 미술인가. 정말 웃기는 뒤죽박죽 쇼야!”

설치미술가이면서 인테리어 디자이너, 무대미술가, 영화미술감독으로 종횡무진하는 인기 작가 최정화(45)가 미술관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오만 잡동사니가 마구 뒤섞여 도떼기 시장이 따로 없다. 야단법석 짬뽕 대행진. 전시 성격을 요약하면 대충 그렇다.

일민미술관에서 1일 시작하는 이 전시는 이름하여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 최정화가 기획하고 연출했다. 작가 수십 명의 작품 수백 점으로 전시장 3개 층을 가득 채웠다. 해외 유명작가의 수 억원 짜리 명품이 시장에서 사온 몇 천원 짜리 물건과 아무렇지 않게 섞여 있고, 작품인지 상품인지 장난인지 헷갈리는 물건도 수두룩하다.

1층 전시장은 낯익은 것들로 오글오글 미어터진다. 시뻘건 솜털을 입힌 돼지저금통과 데생 연습용 석고상, 한국 현대사의 주요 인물 두상, 장군들 흉상 사진, 지구본, 눈 구멍에 지폐를 꽂은 돈독 오른 플라스틱 해골, 숲과 호수를 그린 이발소그림, 불상, 모형 탑, 장난감 칼…. 촌스럽거나 진지한 이 많은 것들이 한 데 모여 자못 풍자적인 장면을 이룬다.

명품과 싸구려의 노골적인 충돌, 아니 즐거운 공존은 2층 전시장에서 더욱 뚜렷하다. 바닥에 되는대로 플라스틱 소쿠리 더미가 잔뜩 쌓여 있고, 촌스런 장식의 플라스틱 샹들리에 옆에는 댄 플래빈의 3억원 짜리 형광등 작품과 각목 틀에 알전구 하나 달랑 올려놓은 작품이 나란히 설치돼 있다.

후줄근한 카페나 허름한 푸줏간에 어울릴 것 같은 형광등이 3억원인 것도 황당하지만, 초라한 알전구가 이 명품과 대결하는 모양새가 더 웃긴다. 도널드 저드의 7억원 짜리 벽걸이 선반형 조각 밑에 놓인 등받이 없는 싸구려 플라스틱 의자는 더 가관이다. 국내 대표적 사진작가 배병우의 유명한 소나무 사진 옆에는 길에서 주웠다는 조악한 비닐 코팅 그림이 붙어있다. 진공청소기에서 빼낸 시커먼 먼지로 그린 북한산 풍경화(공성훈 작)도 있다.

사진과 영상, 설치작품을 전시한 3층은 어수선한 1, 2층과 달리 차분하게 정돈돼 있다. 입구에는 맘대로 갖고 놀라고 자석 무더기를 쌓아놨다. 가장 흥미로운 작품은 올해 대학을 졸업한 젊은 작가 서보경의 비디오 영상 ‘May God Bless You’다. 흰 벽에 광활한 우주와 푸른 하늘이 영상으로 흐르는 가운데 엄숙하고 경건한 억양의 좋은 말씀이 들린다.

‘두려워 말라’ ‘용기없는 당신을 바꿔야 한다’ 어쩌구저쩌구 하는 소리가 꼭 절간의 기념품 점에서 흘러나오는 녹음 소리 같다. 이거야 말로 블랙코미디다. 터무니없이 진지하고, 거룩하게 상투적이서 더욱 배꼽잡고 웃게 만드는. 과녘이 무엇이든 간에, 조롱도 이런 조롱이 없다.

한바탕 요란한 소동 같은 전시다. 이게 뭐냐,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 최정화의 답이 재미있다.

“별 볼일 없는 형광등이 무슨 3억원이나 해요? 미술관이, 제도가 그렇게 만들었죠. 미술? 이게 짜고 치는 고스톱이에요. 이번 전시요? 근엄한 미술(관)과 맞짱 뜨기, 폼 잡고 젠 체 하는 미술은 가라, 뭐 그런 거죠. 정답은 없어요. 미술이 별 건가, 보는 사람 맘대로 느끼면 그만이지. ‘당신의 생각이 나의 예술’이라는데 어쩔 거에요? 속지 말자, 미술! 조심하자, 미술!”

전시는 미술관 밖 거리에도 작품(?)을 내놨다. 예전 초등학교 교정에서 보던 책 읽는 소녀상에 유관순, 이승복상, 롯데월드의 샤롯데 상까지. “저거, 어디서 떼어왔나 보다.” 책읽는 소녀상 앞을 지나던 사람이 말했다. 최정화 왈. “훔쳐온 건데, 폐교에서.” 전시는 10월 15일까지. (02)2020-2055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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