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의 산들은 다부지다. 돌산이 많아서 그런 것일까. 해발이나 산자락의 품에 비해 만만치 않은 체력을 요구한다. 충북을 대표하는 월악산이나 속리산이 모두 그렇다. 월악산국립공원의 끝자락인 금수산(1,016mㆍ제천시 수산면, 단양군 적성면)도 마찬가지이다. 4~6시간의 짧은 코스이지만 옷을 땀으로 흠뻑 적실만큼 화끈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여름을 보내는 시점, 아직 흘릴 땀이 남았다면 금수산의 바위 능선에 오르자.
금수산의 원래 이름은 백운산이었다. 지금도 산 아래에 백운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조선 유학자 퇴계 이황 선생이 단양군수를 지내면서 백운산의 가을 단풍을 보고 반했다.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답다”고 감탄했고 이후 백운산은 금수(錦繡)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산행의 일반적인 기점은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이다. 충주호변도로를 타고가다 상천리로 진입하면 두 곳의 휴게소와 비교적 넓은 주차장, 매표소가 있다. 전세버스를 이용하는 산악회는 이 곳에서 정상에 올랐다가 건너편 상학마을로 하산한다. 하지만 자가용을 이용한 등산객은 금수산, 망덕봉을 잇는 삼각형의 원점회귀코스가 편하다.
초행길, 현지인보다 좋은 안내자는 없다. 휴게소의 일을 보는 청년에게 길을 물었다. 백운산장-용담폭포-선녀탕-망덕봉-금수산-정낭골-백운산장 순으로 산을 타는 게 정석이란다.
백운동의 마을길을 10여 분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백운산장이 나온다. 두부와 향토음식을 팔고 민박도 받는다. 5분 거리에 보문정사가 있다. 돌탑과 법당, 요사채가 전부인 아담한 절이다. 다시 5분을 오르면 커다란 바위 표지석이 있다. 용담폭포를 안내하는 돌이다.
표지석 오른쪽으로 가면 금수산에 바로 오르게 되고, 왼쪽 폭포쪽으로 가면 망덕봉이다. 청년의 안내대로 왼쪽으로 올라 오른쪽으로 내려올 예정. 표지석의 크기만 봐서는 용담폭포의 규모가 백두산의 장백폭포 쯤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용담폭포는 아담하고 예쁜 폭포이다. 요즘 물이 그다지 많지 않아 물줄기가 가늘다. 땀을 씻으려는 사람들이 폭포수를 맞고 있다.
선녀탕은 이 폭포 위에 있다. 바로 오르지 못하고 옆으로 우회해야 한다. 급한 비탈이어서 곳곳에 나무사다리와 줄을 설치해 놓았다. 탕을 보려면 등산로에서 벗어나 약 100m의 내리막길을 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한다. 3단으로 이어지는 선녀탕 주변이 시끌시끌하다. 마을 주민인 듯,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 물에 몸을 담그고 아이들처럼 장난을 치고 있다. 등산이 목적이 아닌가 보다. 막걸리병과 캔맥주를 물 속에 넣어 식히고 있다.
여기까지는 ‘한 잔’하기 위해 찾을 수 있는 산보코스이다. 선녀탕에서 망덕봉까지는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땀을 쏙 빼는 바위 능선이 계속된다. 난코스에는 로프를 매 놓아 그리 위험하지 않다. 길은 돌길이지만 나무가 비교적 많아 따가운 햇살을 피할 수 있다.
헐떡거리며 중간쯤 올랐을까.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잠깐 뒤를 돌아본다. 퇴계 이황 선생도 보지 못했던 풍경이 펼쳐진다. 충주호이다. 옅은 안개(일명 가스)가 끼어 거울처럼 선명하지는 않지만 푸른 물빛이 가슴을 뻥 뚫어주기에 충분하다. 충주호를 배경으로 묘하게 생긴 바위가 솟아있다. 금수산의 명물 중 하나인 독수리바위이다. 날개를 접고 앉아 먹잇감을 응시하는 독수리를 닮았다.
망덕봉에 오르는 길은 돌길이지만 망덕봉 정상은 평평한 흙바닥이다. 여기서 금수산 정상까지는 오르락 내리락 암봉으로 이어진 즐거운 능선길이다. 오른쪽으로 충주호의 풍광과 능선을 넘는 시원한 바람이 함께 한다. 왼쪽 단양 쪽은 그러나 모습이 다르다. 단양의 시멘트 공장들이 통째로 깎아먹은 이웃 산의 모습이 흉물스럽게 다가온다.
금수산 정상은 망덕봉과 달리 뾰족한 돌봉우리이다. 나무로 누대를 만들어 놓았다. 뜨거운 햇볕을 막을 길이 없어 누대 아래 그늘숲에서 사람들이 정상 정복 휴식을 하고 있다.
하산길로 잡은 정낭골은 망덕봉을 올랐던 바위능선과 정반대이다. 깊은 숲 속으로 난 흙길이다. 흙길이지만 경사가 만만치 않다. 바닥도 푸석푸석해 특히 미끄러짐에 조심해야 한다. 발목과 무릎에 용을 쓰느라 땀이 절로 난다. 정상에서 바람에 말렸던 옷이 금방 또 젖는다. 2시간 정도 내려왔을까. 커다란 용담폭포 안내석의 뒷모습이 보이자 한숨이 절로 나온다.
흐르는 땀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다시 폭포를 찾는다. 얼음 같은 낙수에 이 여름의 마지막 땀을 씻는다.
▲ 관광공사 추천 코스가 산행금지?… 행정 엇박자
금수산은 월악산국립공원 금수산지구에 속해 있다. 이 산의 등산로 중 용담폭포에서 망덕봉 구간은 사실 산행금지구역이다. 길 입구에 ‘산행금지’ 푯말이 서 있다. 자연휴식년이나 희귀동식물보호 또는 위험등산로여서가 아니라 ‘정식으로 관리하지 않는 길’이기 때문이다. 정식 등산로가 되려면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게 관리공단 측의 이야기다.
그런데 제천시청 홈페이지의 금수산 안내는 이 코스를 중심으로 설명이 되어 있고, 한국관광공사의 관광지 안내도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이 등산로는 지난 6월 관광공사의 추천여행지에 포함되기도 했다. 마을 주민들도 모두 이 코스를 권하고, 실제로 산행금지 푯말에서 발길을 돌리는 등산객은 거의 없다. 제천시는 등산로의 안전시설 등을 설치하려 해도 국립공원 관련법 때문에 어렵다고 설명한다. 뭔가 잘못됐다.
공신력 있는 기관들이 서로 다른 정보를 전달해 산을 찾은 사람들이 낭패를 보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 산의 대표적인 등산로가 ‘절차’ 때문에 폐쇄되거나 관리되지 않는다는 것도 그렇다. 관련기관의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아름다운 이 등산로를 많은 이들이 ‘죄의식 없이’ 경험할 수 있도록 말이다.
▲ 금수산 여행정보
중앙고속도로 남제천 나들목에서 나와 청풍ㆍ금성 방면으로 우회전, 충주호 청풍호반으로 접어드는 것이 일반적인 접근법. 청풍대교 앞에서 상천ㆍ능강방향 호변도로로 방향을 잡으면 ES리조트, 정방사 입구를 지나 상천리 진입로를 만난다. 수도권에서 출발한다면 중부내륙고속도를 타고, 괴산ㆍ수안보 나들목으로 나와 수안보-월악산 송계계곡-옥순대교로 이어지는 길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조금 돌지만 영동고속도로의 상습 정체 구간인 여주-원주 구간을 피할 수 있다.
금수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충주호는 우리나라 대형 호수 중 관광자원이 가장 잘 개발된 곳. 수년 전만 해도 비포장이어서 접근이 어려웠던 호변도로가 대부분 포장돼 드라이브 하나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수몰 지역의 문화재 등을 모아 놓은 청풍문화재단지(043-647-7003)와 드라마 ‘왕건’촬영장(043-640-5446)이 금수산에서 가깝다.
청풍호 번지점프장, 인공암벽장, 수경분수쇼도 볼 수 있다. 최근 제천시가 지은 상천참숯불가마(043-653-5501)가 금수산 등산로 입구인 상천휴게소 맞은 편에 문을 열었다. 등산 후 불가마 사우나를 하고 샤워를 할 수 있다. 제천시 관광정보센터(043)640-5681, 제천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http://tour.okjc.net
금수산(제천)=글ㆍ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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