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지나고 어느덧 제법 선선한 바람이 아침, 저녁으로 불어와 여름이 가는 듯 하다.
잠도 계절을 타는지라 봄이면 춘곤증으로 많아지고, 여름에는 더위로 불면의 밤을 보내는 경우가 많지만, 가을이 오고 겨울이 되면 잠이 많아지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더구나 수험생들에게 가을바람은 여름내 느슨해진 몸과 마음에 경계경보가 내리게 되고 더욱 잠을 줄여 공부해야겠다는 강박감을 줘 스트레스가 늘어난다. 그래서인지 이맘때는 특히 잠 안 오는 약에 대한 문의가 쏟아진다.
잠을 쫓으려고 할 때 누구나 먼저 생각하는 처방은 커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침에 아직 잠이 덜 깨어 몽롱할 때 한잔의 커피를 마시면 잠이 깨는 각성 효과를 경험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커피는 화장실에 자주 가게 하고 위액 분비를 자극해 속이 쓰리거나 설사를 하게도 하며 불안, 초조감 등 과민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는 커피에 함유되어 있는 카페인 때문인데, 카페인은 중추신경계를 자극해 일시적인 각성 효과를 보이지만, 밤잠을 쫓기 위해 여러 잔의 커피를 마신 경우 졸음을 쫓기보다는 오히려 부작용만 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카페인에는 혈관 수축작용이 있어 심근경색증이나 뇌졸중과 같은 혈관질환의 위험인자가 있는 사람은 피해야 한다. 커피 뿐만 아니라 홍차, 녹차, 스포츠음료, 초콜렛우유 등에도 카페인이 함유돼 있는데, 한잔에 100 mg 미만이다. 대개 하루 카페인 300 mg 정도를 섭취하는 것은 인체에 큰 해로움을 주지 않아 건강한 사람이라면 하루 커피 석잔 정도까지는 괜찮다.
잠 안 오는 약으로는 교감신경계 특히 중추신경계의 강한 흥분작용을 일으켜 수면을 방해하고 피로감을 덜 느끼게 하는 종류가 주로 쓰인다. 그러나 이들 약은 혈압을 올리고 만성중독 시에는 환각이나 정신분열 등 심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항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돼 제조와 유통, 시판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과거에는 약국에서 ‘타이밍’이라는 이름으로 주로 시험기간의 학생들에게 판매되던 약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각성제는 전문의의 처방 하에서만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각성을 유지하는데 관여하는 뇌부위인 시상하부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해 의존성과 중추신경계 부작용을 대폭 줄인 약물이 개발돼 수면과다 증상을 보이는 수면장애의 치료제로 쓰이기도 한다.
잠 안 오는 약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가장 흔한 원인은 수면부족이다. 시험공부를 위해 잠 안 오는 약을 먹어도 몸은 깨어 있지만 뇌는 자고 있는 듯 집중력이 떨어지고 몽롱한 상태를 경험하다가 오히려 시험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장거리 운전, 중장비 사용 등 정교함을 요하는 작업 시에는 오히려 위험하기까지 하다.
가장 좋은 처방은 밤에 충분한 숙면을 취하고, 그래도 낮에 심하게 졸린다면 짧게 낮잠을 자도록 해 머리를 맑게 하고 집중력을 높이는 게 학업과 일의 능률을 올리는 명약이다. 언제나 많이 졸린다고 생각되면 가장 먼저 잠이 부족하지 않은지를 생각해 보라. 그렇지 않다면 숙면을 방해하는 수면무호흡증이나 수면과다 증상을 호소하는 기면증과 같은 수면장애가 동반되어 있지 않은지 수면전문의와의 상담이 필요하다.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이향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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