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자 돌림 네 자매의 활약이 대단하다. KBS1 주말드라마 ‘소문난 칠공주’가 지난 주 시청률 39.4%(TNS미디어코리아)로 MBC ‘주몽’을 근소한 차로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이로써 문영남 작가는 ‘애정의 조건’(2004) ‘장밋빛 인생’(2005)에 이어 3연타석 홈런을 날렸고, 시청률 50%를 넘긴 ‘바람은 불어도’(1996)를 포함해 일일극, 주말극, 미니시리즈 등 모든 시간대에서 흥행에 성공하는 흔치 않은 기록도 세웠다.
그러나 그의 최근작들에는 늘 ‘신파’ ‘통속’이라는 딱지가 붙고, 불륜 혼전임신 불치병 등 자극적이고도 뻔한 설정에다 다소 억지스러운 이야기 전개에 비판이 쏟아지기도 한다. 대중적인 사랑과 날카로운 비판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문 작가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봤다.
희로애락 어우러진 신파극
드라마는 안방에 편히 앉아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보는 매체의 특성상 작품 전체의 흐름에 앞서 장면마다 시청자들을 집중하게 하는 힘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문 작가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그때그때 희로애락 중 하나의 감정을 잡아내 울릴 때는 확실히 울리고 웃길 때는 확실히 웃기는 그의 작품들은 마당놀이나 신파극을 닮아있다.
‘소문난 칠공주’에서는 수술을 앞둔 나양팔(박인환)의 이야기로 눈물샘을 자극하다가 이내 술주정 하는 반찬순(윤미라)의 코믹쇼가 벌어진다. ‘장밋빛 인생’에서는 반성문(손현주)이 맹순이(최진실)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폭력을 휘두른 뒤 우스꽝스런 이혼작전을 짜는 모습이 이어졌다.
신파와 코미디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데는 조연들의 활약이 한 몫 한다. ‘장밋빛 인생’에서 남편의 첩 미스봉(김지영)과 걸쭉한 사투리 대결을 펼친 나문희는 ‘소문난 칠공주’에서 아픈 손녀의 음식을 기어코 빼앗아 먹는 철없는 외할머니로 분해 웃음보를 자극한다.
여성의 공포 혹은 판타지 자극
문 작가는 드라마의 주 시청자층인 여성, 특히 주부들이 갖고 있는 공포와 판타지를 정확히 짚어내 극단적으로 과장하면서 그들이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애정의 조건’은 불륜이나 혼전동거 사실이 드러나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여성의 공포를 극대화 했고, ‘장밋빛 인생’의 순이는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 당하고 사기를 당해 돈까지 날린다. ‘소문난 칠공주’의 이혼녀 덕칠(김혜선)은 그를 만만하게 본 남자에게 성폭행 당할 위기를 겪는다.
울타리를 잃은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의 이면에는 다시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을 찾는 판타지가 자리잡고 있다. 불륜으로 상처 받은 ‘장밋빛 인생’의 영이(이태란)는 지박사(남궁민)를 만나 진정한 행복을 찾고, ‘애정의 조건’의 은파(한가인)도 혼전동거까지 감싸 안는 장수(송일국)를 통해 새 삶을 얻는다.
젊은세대의 로맨스에도 강하다
문 작가 작품들의 주 타깃은 중장년층이지만, 젊은 세대의 로맨스도 맛깔스럽게 그려 젊은 여성들까지 끌어들인다. ‘애정의 조건’에서 은파-장수 커플의 순애보는 시청자들의 눈물을 쏙 빼놓았고, ‘장밋빛 인생’ ‘소문난 칠공주’에는 멋진 연하남(‘칠공주’의 박해진은 극중 이름도 연하남이다!)을 등장시켜 로맨틱 코미디를 선보인다. ‘칠공주’의 막내 종칠(신지수)은 과외선생 황제(이승기)의 아이를 가져 얼떨결에 결혼한 철부지 신부다.
그러나 문 작가 작품의 기반은 여전히 중장년층이다. ‘소문난 칠공주’의 네 자매는 부모 세대가 간절히 바라거나 피하고 싶은 자식의 모습을 유형별로 보여준다. ‘장밋빛 인생’의 순이도 나이는 젊지만 동생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부모 세대의 모습 그대로다.
쉬운 만큼 단순하고 억지스럽다
맹순이, 반성문, 반성해, 나설칠, 나미칠, 연하남…. 문 작가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별난 이름들은 캐릭터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만큼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는데 주력한다. 빠르거나 다중적인 스토리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에게는 어울리는 선택이겠지만, 너무 쉽고 분명하게 이야기를 구성하다 보니 비현실적이고 억지스러운 면이 적지 않다.
‘장밋빛 인생’에서 불륜에 빠져 아내를 내팽개친 반성문은 순이의 병을 알고 갑자기 개심해서 ‘기적의 물’을 찾는다고 호들갑을 떤다. ‘애정의 조건’에서 이혼 당해 온갖 고생을 했던 금파(채시라)는 남편과 재결합한 뒤 시트콤에 가까운 코믹 신을 보여준다.
작품마다 대중적 성공을 거둔 문 작가의 역량은 주목할 만하지만, 남성중심사회에서 빚어진 여성에 대한 편견을 극단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한편에서는 ‘욕 하면서 보는 드라마’의 대표 작가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강명석 객원기자 lennone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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