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기르기에는 아무래도 지금 집이 편치 않다. 12년 동안 듬뿍 정든 방이지만 이사를 해야 할 것 같다. 독립적이고 안전하고 넓고 깨끗하고 전망 좋고 저렴한, 그런 집 어디 없을까? 우선 '필이 꽂히는' 집이나 찾아보자고 산책 삼아 집을 나섰다.
내 방에서도 보이는 미8군 숲 건너편에 제법 괜찮은 곳이 숨어 있었다. 예쁘장한 다세대주택이 둘러싸고 있는 포근한 골목이었다. 나무도 많았다. 기분 좋은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 같았다.
마음에 들어 둘러보는데 어느 집 대문에서 운동복 차림의 60대 아저씨 한 분이 나왔다. 동네 터줏대감 같았다. "이 골목에 셋집 나온 거 없나요?" 내 물음에 그는 심드렁히 고개를 저으며 없다고 했다. 그 골목을 등진 뒤로도 여러 골목을 누볐다.
자꾸 집집의 옥상에 눈이 갔는데, 거기 올려진 건축물들이 작아서 놀라웠다. 내 방만한 데도 없는 것 같았다. TV드라마를 보면 근사한 옥탑방도 많더구먼.
꼭 옥탑방이어야 할 건 없겠지. 선택의 폭을 넓히려 했지만, 붙어 있다시피 모여 있는 집들의 여타 층을 보니 숨이 막혔다. 내 복이다.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유형의 셋집이 체질에 맞으니.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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