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소한 체구에 주황색 ‘추리닝’ 바지를 입고 괴상한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사람이 “나는 연예계의 톱 스타!”라고 말한다. 또 축 늘어진 뱃살에 찢어진 러닝셔츠를 걸친 사람이 “이게 압구정 최신 트렌드야!”라고 큰소리 치며 명품으로 치장한 남자들을 조롱한다.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의 주력 코너인 ‘몽키 브라더스’, KBS2 ‘개그콘서트’의 ‘패션 7080’에 등장하는 자칭 명품족의 행태다. 요즘 TV 개그 프로그램은 이들처럼 못 말리는 잘난 척 빼고는 내세울 게 없는 못난이들의 전성시대다.
‘웃찾사’의 ‘퀸카 만들기 대작전’에서는 못생긴 여자들이 예쁜 여자들에게 “닥쳐!”를 외치며 퀸카 되기 비법을 일러준다. MBC ‘개그야(夜)’의 ‘어머 정말’에서는 못나고 인기 없는 여고생 삼총사가 씨알도 안 먹힐 자랑을 늘어놓다가 번번이 들통이 난다. 개그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이기주의 빼곤 대한민국 평균이하’를 자처하는 출연자들이 “그나마 내가 잘났다”며 싸워대는 MBC ‘무한도전’도 못난이들의 뻔뻔함을 웃음의 주무기로 삼는다.
이런 못난이들의 ‘잘난 척 개그’는 못난 캐릭터가 당당하게 잘난 사람을 호통치고 조롱할 때 생기는 통쾌함이 매력이다. ‘웃찾사’의 박상혁 PD는 “몽키 브라더스는 덩치 크고 위압적인 연예 기획사의 매니저를, 몸집도 작고 재주도 없는 두 남자가 조롱하며 기존의 권력관계를 뒤집는 통쾌함이 있다”고 말한다.
과거 개그 프로그램에 등장한 못난이 캐릭터들이 ‘영구’나 ‘맹구’처럼 우스꽝스러운 언행으로 늘 당하기만 했다면, 요즘 못난이들은 “못난 게 어때서?”라고 덤비는 것으로 관객의 웃음을 끌어낸다. ‘패션 7080’ 코너를 이끌고 있는 개그맨 박준형은 “몇 년 전에는 ‘나 못났다’ 하고 내세우는 개그가 잘 통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반응이 뜨겁다. 관객이 확실히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개그콘서트’의 ‘현대생활백수’에서 옛날 같으면 늘 놀림과 구박의 대상이었던 백수 캐릭터가 거꾸로 직장인을 놀리며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이 같은 관객의 변화를 반영한다.
대중이 잘난 쪽보다는 못난 캐릭터에 자신을 동일시하고, 현실에서는 좀처럼 일어나기 어려운 이들의 뻔뻔한 행태에 박장대소 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문화평론가 이명석씨는 “과거에는 자신이 평균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바보를 공격하며 ‘나는 바보가 아니다’라고 만족했지만, 요즘은 스스로를 ‘마이너리티’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아져 마이너리티 캐릭터가 잘난 척 하며 만족하는 걸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고 말했다.
못난이들의 ‘잘난 척 개그’는 평범하면 ‘못난이’ 취급을 받는 세태에 대한 통렬한 풍자이기도 하다. ‘웃찾사’의 ‘놀아줘’는 돈 많고 멋지게 차려 입은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려는 것을 기괴한 분장의 네 남자가 사사건건 방해하며 이젠 연애도 돈 많은 남자가 더 잘한다는 사회 인식을 뒤튼다.
또 ‘패션 7080’과 ‘퀸카 만들기 대작전’은 ‘명품’을 걸치고 ‘퀸카’가 돼야 대접 받는 현실을 풍자한다. ‘개그콘서트’의 김석현 PD는 “개그는 결국 대중이 가장 공감하는 쪽을 따라가게 마련이다. 요즘 잘난 사람들을 공격하는 못난이 캐릭터가 부상하는 것은 대중이 잘난 사람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객원 기자 lennone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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