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ㆍ4분기 가계 빚 규모가 546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보도는 2002년 개인 신용대란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불어난 빚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험신호로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가계 빚 가운데 금융권 대출금액은 16조 7,287억원이 늘어나 4년 만에 최고 증가치를 기록했다. 특히 가계가 시중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의 54%는 주택담보대출이다.
부동산 가격의 하향 안정세와 금리인상으로 리스크는 높아가는데도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는 여전하다.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규제 방침이 씨도 먹히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지난해부터 외형 부풀리기(자산 확대) 경쟁에 몰입해 있는 시중 은행들이 가장 손쉽고, 위험이 적은 주택담보대출을 남발했기 때문이다.
잇따른 금리 인상으로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이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지난해 10월 초 3.93%에서 최근 4.70% 수준까지 올랐다. 자산 건전성이나 리스크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상황이지만, 은행은 그보다는 외형확대가 먼저다.
카드 대출 증가 양상도 심상치가 않다. 올 1ㆍ4분기에 마이너스 3,782억원을 기록한 카드대출이 2ㆍ4분기에는 3,654억원이나 늘어났다. 한국은행은 이례적으로 '카드 대출 급증 주의보'를 내리기에 이르렀다.
2002년 카드대란을 부른 무분별한 신규 회원 확보 및 대출 경쟁이 재연될 조짐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나타난 은행권 카드사들의 외형 확대 경쟁은 최근 LG카드 매각을 계기로 더욱 뜨거워지는 분위기다.
가계 입장에서 본다면 올들어 소득은 제자리 걸음인데 각종 세금과 이자부담이 늘어나고 있으니 빚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경기침체에 따른 민생의 어려움이 빚의 증가로 나타난다는 얘기다. 가계 빚의 증가는 당장 소비에도 악영향을 미치지만 거시경제의 불안정을 키우게 된다. 한번 겪은 위기를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 가계 신용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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