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들 쓰고 죽을 뻔했어요." 고희를 맞은 노학자의 엄살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2월말, 두 권을 탈고하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 고혈압과 위장병이 달겨들었다. 유민영(70) 단국대 석좌교수는 그러나 이제 파안대소다. 막 볕을 본 '한국 인물 연극사'(태학사 발행) 두 권이 인고의 시간을 증거하고 있다. 1권에 7년, 2권에 4년이 걸렸다. 원고지로 7,000장 분량에 각각 800여쪽이다.
"61명이더군요. 마침 올해가 해방 61주년 아니겠어요?" 게다가 자신의 고희까지 겹쳤으니, 난산의 늦둥이가 따로 없다는 것. 전통의 연극적 자산을 정리한 신재효에서 한국적 연극학과 민속학의 기반을 다진 이두현 선생에 이르기까지, 한국 연극의 선구적 거장들이 이 책에서 어깨를 겯고 있다.
서울대 국문과 57학번인 그가 대학원생이던 1960년대에 연극사를 염두에 두고 곰팡내 나던 책더미를 뒤지던 시간에 대한 체면치레도 이젠 됐다. "롯데호텔 옆 국립도서관에 방학만 되면 김윤식(명지대 석좌교수) 선배와 맨날 가서, 나는 죽어라 연극 자료를 필사했죠." 희곡집은 태어날 엄두도 못 낼 때 '개벽' '삼천리' 등의 잡지에 실렸던 연극 관련 글들은 그의 현미경적 수작업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한국희곡사'(1982)를 필두로 '한국극장사' '한국근대연극사' 등 독보적 저작들이 그렇게 태동했다.
"역사는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는 결론에 달했죠." 1966년 석사 논문으로 '유치진론'을 썼던 기억이 30여년만에 주인을 다그쳤다. 1990년대 자신이 쓴 국내 최초의 연극인 평전인 '이해랑 평전'으로 그는 스스로 격려됐다.
"나이 들고 머릴 쓰니, 쉬 흥분돼 불면 상태가 되곤 했어요." 소주나 포도주의 힘을 빌다, 의사인 사위의 도움으로 수면제 신세까지 져야 했던 두 권의 책. 그가 "나의 피, 땀, 혼"이라고 이름하는 이유다. 꼼꼼히 교정을 봐준 출판계 출신의 부인(67)에게 새삼 감사의 말을 전한다고 했다.
"너도 나도 극단 만들어 TV나 영화 진출의 길목 정도로 여기는 요즘 연극인들에게 교훈을 주는 기회가 됐으면 해요." 만년 단역 정도로 비치기 십상인 고설봉, 강계식씨가 이 책에서는 소위 거물들과 같은 분량의 연극인으로 서술됐다. "참 선한 사람들이죠. 제대로 대접 못 받았지만 연극에 대한 사랑은 어느 누구 못지 않았죠."
그는 한숨 돌리기도 전에, 미뤄놓은 '해방 이후 현대 연극사' 집필 작업에 막 들어갔다. "한 3~4년 뒤 탈고할 작정이에요."
장병욱 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