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을 넘긴 노학자가 대중용 과학서를 냈다. 학술원 회원인 김준민(金遵敏ㆍ92) 서울대 명예교수. 나이가 들어서도 왕성한 학구열을 보이거나 활발한 저작활동을 하는 학자가 적지 않지만, 구순을 넘은 나이에 책을 낸 예는 매우 드물다.
그가 최근 쓴 '들풀에서 줍는 과학'(지성사 발행)은 과학에 대한 상식과 함께, 잘못 알려졌거나 논란이 될만한 것들을 담고 있어서 그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논쟁적이다.
그 가운데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산성비. 그는 "산성비의 공포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고 잘라 말한다. 산성비의 공포는 1970년대 말 유럽, 미국 등에서 시작했으나 지금은 오히려 잠잠해지면서 급속히 진정되는 추세라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지난 10년간 빗물 산성도가 거의 차이가 없고, (공해가 심한)서울과 (공해가 적은) 제주의 빗물 산성도가 비슷하며, 서울 목포 등 (대기 오염이 매우 심한) 중국과 가까운 곳의 산성도가 부산 춘천 등 먼 곳보다 덜 심각하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생각도 비슷하다. "지구가 더워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기 등 무공해 동력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을 서두르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지구의 앞날을 너무 두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흔히 양지에서 자란다는 진달래가 실은 산악의 북사면 음지에서 더 잘 자라고 식물의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은 추위라는 등의 흥미로운 내용도 책은 담고 있다.
한국 생태학의 거두로 인정받는 김 교수이지만 이번 책은 주제, 내용 전개방식, 문장 등 여러 면에서 대중적이다. 이에 대해 그는 "과학이 어려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중학생 정도의 지식을 갖춘 사람도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중학교 3학년 손자가 책을 읽은 뒤 '재미있다'고 말해 나도 기분이 참 좋아요."
학창 시절에는 역도 등을 했고 서울대 교수 시절에는 테니스를 즐겼지만 지금 특별한 건강비결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요즘도 돋보기를 걸친 채 방에서 책 읽고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등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이 때문에 책 한 권 내는 게 어렵거나 복잡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요즘은 영국 학자 크로포드의 '식물의 생존 전략'을 읽고 있는데 조만간 이를 번역해 책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평생 해온 일입니다. 힘들면 못해요."
그는 "책 쓰기는 여전히 재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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