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경제연구기관의 경기하강 우려를 공박하며 실물지표의 탄탄함을 강변해오던 정부가 마침내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세를 잔뜩 낮추는 모습이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어제 "올해 5% 성장을 해도 교역조건 악화로 국민총소득(GNI)은 불황 수준인 1.5% 늘어나는데 그칠 것"이라며 "내년 우리 경제는 4% 중반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돼 금년보다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체감경기의 부분적 호전과 정책수단의 폭 확대 등 '희망'을 덧붙이긴 했으나 최고 정책당국자가 4%대 성장을 공식 언급한 것은 낯설기조차 하다.
국내외 경제환경을 보거나 경기지표의 추이를 따지면 하반기 이후 우리 경제 앞에는 악재가 줄서 있다. 유가ㆍ환율 부담에 더해 7,8월의 수해와 자동차업계 파업 여파가 본격적인 주름살로 나타나는 데다 내달엔 발전노조의 파업이 우려되고 10월 상순은 징검다리 추석연휴로 대부분의 사업장이 문을 닫게 된다.
반면 연휴를 이용한 해외여행객은 사상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생산ㆍ수출ㆍ소비에 걸쳐 경기 상승기조가 탄력을 받을 조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또 최대 복병인 건설경기는 시장상황을 외면한 채 집값 잡기에만 노심초사하는 정책 때문에 침체일로다. 특히 지방 건설업체는 미분양ㆍ미입주 물량 급증으로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다.
1분기에 반짝했던 미국 등 세계경제의 주요 축이 고유가와 긴축 등의 영향으로 냉각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경고도 우울하다. 이로 인해 수출이 타격을 받으면 우리 경제는 쇼크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사태의 엄중함을 깨닫고 건설경기 진작, 기업환경 개선 등의 처방을 서두르는 것을 시비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여전히 손 안에서 여러 카드를 깔짝거릴 뿐, 시장을 선도하는 통큰 리더십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흘려보내면 '서민의 고통과 기업의 좌절 위에서 코드와 이념만 따지는 패륜아'라는 비난을 받을지도 모른다. 얽힌 실타래를 칼로 내려치는 결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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