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논리적으로 만들어져 있고, 인간의 만사가 논리적으로만 진행된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제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경우의 수라도, 그것을 계산하여 판단할 컴퓨터를 만들어 내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나 컴퓨터의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는 너무도 쉽게 인간의 경험을 초월하는 수를 경험한다.
● 정치도 언론도 슈퍼컴퓨터 자처
출장 판매원 이론이 예다. 외판원이 겨우 스물 다섯 집을 차례로 방문하는 데 어떤 경로를 택하는 것이 가장 최단거리일까를 판단해야 한다. 그 모든 가능성을 계산할 때 1초에 백만 개의 경우를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를 사용한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실제로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확인하겠지만, 물경 98억 년이 걸린다. 믿기 어려운 결론이다. 하지만 뻔해 보여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들로 가득한 게 우리의 환경이다. 그땐 최적의 선택을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지구라는 이름의 별에 사는 인간들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두고 논쟁하는 데 진절머리가 났다. 그래서 그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 버리기로 작정하고 어마어마한 슈퍼컴퓨터를 만들었다. 모든 것을 가장 빠른 시간에 계산하고 판단할 수 있는 초절정의 능력을 갖춘 컴퓨터여서, 우선 그 크기도 웬만한 도시 정도였다.
백만 분의 일 초 안에 별 하나의 원자 수를 모조리 헤아릴 수 있는 컴퓨터는 주판 수준으로 취급했다. 단그라바드 베타라고 불리는 성에 5주 동안 불어닥친 모래바람 속의 모든 먼지 알갱이 하나하나의 궤도 계산은 휴대용 전자계산기의 능력 정도로 치부했다.
그 탁월한 컴퓨터에게 물었다, 인간의 삶이 무엇이냐고. 컴퓨터는 그 문제를 푸는 데는 시간이 좀 필요한데, 자그마치 칠백오십만 년 정도 기다려달라고 했다. 더글러스 애덤스의 환상적 장편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오는 일화다.
정치하는 사람, 또는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다. 그리고 그 판세를 지켜보는 언론은 그게 무슨 해결방식이냐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다. 가만 생각해 보니 정치인이건 언론이건 모두 슈퍼컴퓨터임을 자처하는 듯하다. 자기 상표를 과시하며, 자신만이 사태의 본질과 해답을 알고 있다는 듯 과장된 목소리를 낸다.
'바다 이야기'란 낭만적 이름이 붙은 성인용 오락기 사건을 보자. 오락기를 누가 만들어 몇 대를 설치하고, 로비를 통한 대가는 얼마였으며, 그 결과 사업자가 얻은 이익은 어느 정도며, 개별 점포의 사정은 또 어떠한가, 게다가 그로 인한 개인의 파산까지 들먹인다.
말하자면 한 사건이 불거지면 그와 관련한 모든 것을 다 들추어 내야 직성이 풀린다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그 참에 경마장, 경륜장, 경정장에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벌어지는 황폐한 현상도 함께 거론하는 게 옳지 않을까. 발로 뛴 기자와 제목을 뽑는 데스크의 생각이 다르다.
그 차이가 드러난 기사가 도배질된 신문을 읽고 정치인들은 장단을 맞추거나 흥분한다. 어디 그뿐이랴. 인물 검증이나 정책 비판도 마찬가지 양식이다.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이성적 토론을 벌이는 시대는 지난 듯하다. 죽이느냐 물러서느냐의 승부사들만 남았다. 모든 현상이 폭로라기보다 전쟁이란 인상을 준다.
● 스스로의 용량부터 자각해야
우리 앞에 구체적 사안이 하나 놓여있다고 하자. 그것과 관련된 모든 요소를 몽땅 늘어놓는다고 해답을 얻는 데 도움이 될까. 더군다나 목적이 사회 통합을 향한 이성적 해결이 아니라 부정적 요소의 망라를 수단으로 한 총공세에 있다면 어떤가.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삶의 시간 안에서는 결말을 볼 수가 없다.
상대방 헐뜯기에만 혈안인 정치인과 언론은 스스로의 용량을 자각해야 한다. 최적화의 방법을 찾을 줄 알아야 하는데, 그 기본은 상대방의 이해다. 거기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차병직ㆍ참여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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