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 무용수인 강수진(39)과 서울 신라호텔에서 만난 24일 밤. 악수를 하면서도 시선은 어느새 아래로 향했다. ‘여름이니까 혹시 발이 보이는 샌들을 신지는 않았을까’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발은 구슬이 달린 예쁜 구두 속에 감춰져 있었다. 강수진은 “발이 너무 못생겨서 아무리 더워도 내놓지 못해요. 집에서 발톱에 매니큐어를 바른 적이 있는데, 남편이 너무 웃기다며 얼른 지우라고 한 적도 있어요”라며 크게 웃었다.
요정 같은 무대 위의 모습과 눈물겨울 만큼 흉하게 일그러진 발로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던 발레 스타 강수진이 어느새 불혹의 나이가 됐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한 지 만 20년. 하지만 여전히 그는 ‘강철나비’라는 별명과 함께 세계를 누비고 있다.
제3회 서울국제무용콩쿠르의 심사위원을 맡아 22일 귀국한 그는 심사 외에도 워크숍과 팬 사인회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팬들을 만나고 있다. 30일에는 서울사이버대에서 발레 영재들을 대상으로 클래스를 열고, 신촌의 애니콜 스튜디오에 풋프린트를 남기는 행사도 갖는다. 다음달 2일 독일로 돌아가는 강수진은 10월 14, 15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로 다시 고국팬들을 찾아온다.
-콩쿠르 심사와 워크숍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데.
“오늘 학생 60명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했는데, 가르치는 것도 경험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가르치면서 가르치는 것을 배웠다. 후배들에게 내가 가진 것들 다 전해주고 싶은데 시간은 짧고 욕심은 많다 보니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좋은 발레리나가 좋은 선생은 아닌 것 같다. 다음에는 좀 더 심플하고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할 것 같다.”
-한국 발레가 많이 달라졌나.
“몇 년에 한번씩 올 때마다 후배들의 달라진 모습을 보면 기특하고 예쁘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무용수들도 많아졌고, 무엇보다 신체적 콤플렉스가 거의 없어졌다. 테크닉도 좋아졌다. 다만 좀 더 개성을 살려야 하는 게 숙제다.”
-최연소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했다가 지금은 가장 나이 많은 무용수가 됐는데.
“그렇다. 하지만 예전보다 훨씬 좋다. 모든 것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젠 작품도 내가 선택할 수 있고, 체력 문제도 경험이 많으니까 큰 어려움을 느끼진 않는다. 물론 눈가 주름을 보면 나도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젊은이들의 신선함이 부럽지는 않다. 헤매던 젊은 시절보다 지금이 더 좋고, 50대가 되면 더 행복할 것 같다. 더 성숙해질 테니까. 아, 40대가 되어서 달라진 게 딱 하나 있다. 요즘은 예쁜 옷이나 가방, 구두에 눈이 간다. 예전엔 1년 내내 같은 가방만 들고 다녔는데….”
-2004년 내한 당시 ‘다음에는 희극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다.
“그간 한국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카멜리아의 여인’‘오네긴’ 등으로 늘 드라마틱한 모습만 보여줬다. 그래서 좀 다르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 생각조차 하지 않던 작품인데 97년 레이드 앤더슨 예술감독이 강제로 시켜서 처음 했다. 연습 도중 ‘안 어울리면 그냥 나를 빼라’고 했을 만큼 자신감이 없었다. 하지만 공연을 거듭하면서 나만의 카타리나를 찾았다. 예술이 재미 있는 게, 하면 할수록 달라지고 성숙해진다. 삶과도 비슷한 점이다.
-이번 공연이 마지막 내한공연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
“은퇴에 대해 말들이 많은 것을 잘 안다. ‘강수진이 언제 관둔다더라’ 하는 얘기 참 많이 들었다. 심지어 아이를 가졌다는 소리도 들었다. 생각은 자유지만 나 스스로 은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몸이 정신을 따라올 때까지는 춤을 출 것이다. ‘골골’하기 전에는 그만둬야겠지. 하지만 이번 공연이 절대 마지막은 아니다. 아직 할 일이 너무 많다.”
-내한 공연을 앞둔 소감은.
“수많은 공연을 하지만 한국 공연은 좀 특별하다. 한국은 내 ‘피’니까, 그리고 나를 오랫동안 보호해준 게 한국팬들이니까. 혼?할 수 있는 예술도 있지만 발레는 라이브쇼라 관객이 없으면 할 수가 없다. 공연 때마다 공연장을 가득 메워주는 한국팬들을 보면 정말 고맙다. 나는 한국인이라는 데 대한 자부심이 강한 편이다. 외국에서 공연을 한 후 신문 기사에 ‘한국인 강수진’이라는 문구가 나오면 너무 기분이 좋다. 국위선양을 한 느낌이랄까.”
-발레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더 때는.
“힘든 적이 참 많았다. 모나코에 유학 가서 적응하지 못했을 때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입단 후 군무(群舞)에 조차 끼지 못했을 때도 어려웠지만 99년 부상으로 1년을 쉬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무용수상을 받은 그 해 왼쪽 다리에 금이 갔다는 진단을 받았다. 다시 발레를 할 수 있을지 조차 몰랐기 때문에 너무 슬펐다. 하지만 그때 1년을 쉬지 않았다면 벅차고 질려서 벌써 발레를 그만뒀을 지도 모른다. 모든 게 다 운명인 것 같다.”
-본인이 꼽는 성공 비결이 있다면.
“테크닉과 개성, 무대 위에서의 카리스마 등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인복이 많았던 것 같다. 어릴 때 유학을 보내고 뒷받침해준 부모님과 발레를 그만두려는 나를 잡아준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의 마리카 베소브라소바 교장선생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신랑도 잘 만났고(강수진은 2002년 동료 무용수였던 터키인 툰치 쇼크만과 결혼했다). 매니저인 신랑은 자다가도 나를 웃게 해준다. 된장찌개를 끓여주고 김치도 담가준다.”
-다시 태어나면 절대 발레는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여전히 그런가.
“작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극장에서 발성 연습을 하는 오페라 가수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 생에는 음악이 하고 싶었다. 그런데 마흔이 되니까 발레가 더 아름답게 보인다. 알수록 더 좋아하게 된다. 전에는 발레는 절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젠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웃음)
-발레를 하고 있는, 하려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자신만의 색깔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인내심과 꾸준한 노력은 필수다. 유학을 갈 때는 선생님과 부모님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의지가 있어야 한다. 생각보다 우리는 많은 것을 가졌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모습을 다 모르는 경우도 많지 않나. 발레는 마약과 같다. 발레에 몰두해 있는 그 순간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많은 후배들이 그런 기쁨과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약력
-1967년 4월 24일 서울 출생
-1982년 선화예중 졸업
-1982년 선화예고 1학년 때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로 유학
-1985년 스위스 로잔 콩쿠르 동양인 최초 1위
-198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최연소 입단
-1997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 무용수
-1999년 세계 최고 권위의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 무용수상 수상
김지원기자 eddie@hk.co.kr
■ 숫자로 살펴본 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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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은 열세 살 때 발레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한국무용을 하다 선화예중에 입학한 후에야 발레를 시작했다. 이미 뼈가 굳은 상태에서 발레를 시작해 어려움이 많았지만 강수진은 “약간 늦게 시작해서 오히려 더 오랫동안 발레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내겐 플러스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가능하면 일찍 시작하는 게 좋다”고 권했다.
26
강수진은 열여덟 살 때인 85년 스위스 로잔 국제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1위를 했다. 모나코 유학 3년 만에 이룬 쾌거였는데 그 때 참가번호가 26번이다. 그는 “내가 최고의 상을 타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26번’하고 부르는 순간 ‘와, 정말 나야?’라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고 회상했다.
49
강수진은 규칙적인 생활과 연습으로 충분히 먹으면서도 167㎝에 49㎏의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86년 최연소로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한 후 1년이 지나도록 군무(群舞)에조차 끼지 못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몸무게가 10㎏이나 더 불어난 적도 있다.
250
솔로로 발탁됐을 때 강수진은 한 시즌(10개월 반) 동안 평균 250켤레의 토슈즈를 사용했다. 연습벌레로 유명한 강수진은 남들이 2~3주 동안 신는 토슈즈 한 켤례를 하루 만에 갈아 신은 적도 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물품 담당자는 그런 강수진에게 “제발 좀 아껴써달라”고 통사정을 하기도 했다. 강수진은 “이젠 아무도 내게 그런 말을 못한다”며 웃었다.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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