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샌타페이라는 소도시가 있다. 남서부 뉴멕시코주 사막에 위치한 이 휴양도시에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화랑가가 있다. 근처엔 인디언 보호구역도 있다. 청량한 기후와 ‘어도비 양식’으로 불리는 멕시코풍의 진흙 건축이 이 도시를 유수의 예술도시로 만들었다.
3층 이하로 모서리가 둥글고 진흙 빛을 내는 어도비 건물은, 어릴 때 모래로 만들던 두꺼비집을 떠올리게 한다. 내부는 완전히 현대적 시설을 갖추고 있으나, 편안하고 친숙한 정서를 자아내면서 사람을 예술과 가까워지게 만든다. 시는 1950년대부터 이 양식만 준수하도록 규제해 왔다.
▦ 러시아 바이칼호 주변의 통나무집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다. 내ㆍ외벽과 마루, 천장 등을 모두 두툼한 소나무 판자로 한 현대식 빌라 촌이다.
마을에 들어설 때부터 소나무 향이 풍겨오기 시작하여, 집과 방으로 옮김에 따라 향이 진해진다. 방에는 전기조명과 화장실이 정갈하게 갖춰져 있으나, 전화도 TV도 없었다. 불을 끄니 시베리아 숲의 정적과 원시의 어둠이 밀려 왔다. 소나무 향이 자연의 정기처럼 스며드는 듯했다. 고요한 감격으로 한 동안 잠을 들 수 없었다.
▦ 20세기 이후 기능성 위주의 모더니즘 건축과 이에 대한 반성으로 등장한 포스트 모더니즘 양식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각지에서 전통과 토착 정서, 친(親)자연을 추구하는 건축도 미약하나마 흐름을 유지해 왔다. 경기 김포 신도시에 한옥마을이 들어선다고 한다. 개발지구에 한옥마을이 들어서기는 처음이다.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서도 또 다른 낭보가 들린다. 1990년대 이후, 겉으로 보존이 외쳐지지만 속으로는 개발이 계속되어 집값이 치솟던 동네다. 서울시가 한옥을 매입하고 원형을 살린 후 외국인 한국체험 게스트하우스로 관광자원화한다는 것이다.
▦ 북촌 한옥 마루에 서면, 이리저리 중첩된 기와지붕의 선이 곱다. 지붕에 눈이라도 쌓이면 동양적 아름다움이 더욱 환상적일 터인데, 저 멀리는 남산의 모습도 보인다.
잠시 조선시대 이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즐거운 착각에 빠지게 된다. 주위를 감싸고 도는 소나무 향과 대나무의 운치…. 이것이 한국이고 문화일 것이다. 전통 한옥을 통해 일상과 문화, 자연이 어울리던 삶의 회복을 꿈꾸어 본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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