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만 있었을까. 독립운동일까 민족해방운동일까. 의사(義士)라 불러야 하나 열사(烈士)라 해야 하나….
역사 용어에는 그것을 만든 주체와 그 주체가 역사를 보는 시선이 담겨있다. 하지만 우린 역사 용어를 관용적으로 사용할 뿐, 그 의미가 탈색되진 않았는지, 현실을 잘못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을 별로 하지 않는다. 이런 풍토에 반기를 들며 나온 책이 ‘역사용어 바로쓰기’(역사비평사)다. 35명의 학자들이, 용어의 적절성을 따지고 잘못된 용어가 사용된 배경을 살피며 대안을 모색한다.
김태식 홍익대 교수는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만 공존한 기간이 98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삼국시대가 아니라, 가야를 포함한 ‘사국시대’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가야가 문헌상으론 42년에 성립해 562년에 망했지만 실제로는 신라와 마찬가지로 기원전 2세기말 혹은 1세기 초 세워졌으며 4, 5세기에는 백제 신라와 경쟁하면서도 때로는 힘을 합쳐 고구려에 대항할 정도로 굳건한 나라였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이화 동학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은 1881년 일본 문물제도를 시찰한 조선 관리들을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명칭은‘예절이 바른 점잖은 사람(紳士)들이 어슬렁거리며 산천 구경을 한 모임’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선의 장래를 짊어질 관리들을 일본에 보내 신문물을 보게 하고 국가 정책에 반영하려 했기 때문에 ‘1881년 일본시찰단’이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이기훈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 전문위원은 독립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의 차이를 설명한다. 흔히 독립운동을 우익, 민족해방운동을 좌익 용어로 받아들이지만, 제국주의와 싸워 민족을 해방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민족운동이라는 점에서는 뜻이 같다는 것이다. 임시정부를 포함해 일제 하에서는 두 용어가 큰 차이 없이 사용됐다. 그러나 민족해방운동이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국가 체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일본 침략을 받은 중국의 항일운동은, 독립운동이라는 용어보다는 민족해방운동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식이다.
김동택 성균관대 연구교수는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조차 ‘아미리가’(阿美利加)나 ‘합중국’(合衆國), ‘합중국화족국’ ‘유나이텟드 스텟즈’등으로 표기한 미국을 어느 시전부터인가 ‘아름다운 나라’(美國)로 표기하는 것이나, 오랜 역사적 관습 속에서 중국을 세상의 중심으로 여기고 중국(中國)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자고 제안한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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