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크타르 마이 지음ㆍ조은섭 옮김 / 이룸 발행ㆍ9,700원
그 고백은 핏빛 울부짖음이다. 증오의 힘으로 세상, 아니 남성 중심의 사회를 버텨낸 어느 여인의 기억은 잔인하리만치 똑똑히 세상을 응시한다.
소작농 집안의 열두 살짜리 동생이 높은 신분의 아가씨에게 말을 걸었다. 누나로서 죄값을 뒤집어쓴 저자(34)는 그 부족의 남자들에게 윤간을 당한다. 이른바 ‘명예 범죄’의 폐습에 저자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윤간한 남자들을 법정에 세움으로써, 일약 세계의 관심으로 떠올랐다. 파키스탄의 천민층(구자르)으로부터 들려오는 기막힌 이야기에 세계는 흥분하고 감동했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죽을까 하는 생각만 하고 살았는데, 죽음의 그물로부터 나를 끌어낸 것은 뜻밖에도 솟구치는 분노였다. 분노가 삶의 의지를 부추겼다.”
책에는 그녀가 침묵을 깨고 굴레를 벗어나 세상과 맞서기까지의, 지난한 법정 투쟁이 세계를 감동시켜 마침내 승리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육성으로 담겨져 있다.
“이제는 내가 복수할 차례였다. 내가 당한 만큼, 그리고 죽고 싶었던, 그 끔찍한 시간들을 되돌려줄 시간이었다.” 그녀가 합의 이혼했고, 자식이 없는 까닭에 그녀는 싸움에 집중할 수 있었다. 또 코란 선생으로서 존경 받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도 힘이 돼 주었다. 이후 일련의 공방에 대한 기록은 흥미로운 법정 드라마를 보는 듯 하다. 접하기 힘든 이슬람 사회에서의 관습 등도 자연스레 펼쳐져 그들의 문화와 심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녀는 순수 토박이 파키스탄 사람이다. 펀잡 지방의 사투리밖에 모르는 그녀의 구술을 녹취해서 불역한 것을 불문학자 조은섭 씨가 국역했다. 옮긴이는 “이 책은 학대 받는 여성, 마이너리티의 이야기”라며 “반 이슬람적 서적은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데올로기 이전의, 인간 실존에 관한 기록이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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