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기업 퇴직자의 자녀가 회사에 입사할 경우 우선 채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고용세습’이 노사교섭의 대상이라는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이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중노위는 SK㈜ 사측이 지난 달 단체협상 과정에서 ‘구조조정에 의한 조기퇴직의 경우 자녀의 고용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내용을 명문화하자는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제출한 중재신청에 대해 24일 “노사 양측은 각 5명씩으로 고용안정위원회를 설치해 이 문제를 논의하라”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경영권 침해의 우려가 있다며 고용세습 조항을 극렬히 반대해 온 재계에 비상이 걸렸다. 이번 결정이 사측에게 세습 고용을 하라는 적극적인 의미는 아니지만 가뜩이나 불안정한 노사관계에 채용문제라는 또 하나의 불씨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연례 행사처럼 매년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하는 대기업 노조들이 임ㆍ단협 등을 통해 ‘퇴직자 자녀의 우선 채용 명문화’ 등을 요구할 경우 사측으로서는 거부할 근거가 없어진 셈이다.
당사자인 SK㈜ 사측은 “중재결정에 따라 노조측과 협의는 하겠지만, 노조의 조기 퇴직자 우선 채용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SK㈜는 지금까지 정년 퇴직자나 업무상 재해에 의한 퇴직자 자녀에 한해서 입사 편의 제공을 단체협약 사안으로 규정해 놓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도 “대기업 노조의 지나친 욕심에 다수의 일반 구직자가 희생될 수 있다”며 “퇴직자 자녀에게 특혜를 줄 경우 해당 기업에 입사하려는 다른 지원자는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는 일단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 문제에 대해 아직 민노총 차원에서 논의한 바 없다”며 “향후 각 사업장의 협상 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도 “노동자들이 느끼는 극도의 고용불안감이 표출된 결과로 본다”면서도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 차원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만큼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은 대체로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취업준비생 주모(28)씨는 “이번 결정은 일반 구직자들의 취업기회를 사실상 박탈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수백 대 1의 취업경쟁을 맞닥뜨린 사람들이 ‘고용세습’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흥분했다. 인터넷 토론공간에도 “경영세습이나 고용세습이나 똑같다” “현대판 ‘음서제도’의 부활”이라는 등의 비판의견이 꼬리를 물었다.
박진용기자 hub@hk.co.kr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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