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설 너머 눈부신 희망을 봤죠"
17일 낮 12시 30분 뉴질랜드 북섬 최고봉 루아페후 정상(해발 2,797㎙). 새하얀 만년설과 파란 하늘이 맞닿은 곳에 앞을 보지 못하는 한국 청소년 3명이 우뚝 올라 섰다.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충주 성모학교에 다니는 한윤미(고1)양과 김종석(중3), 유재준(중3)군.
또래 청소년 10여명의 도움을 받아 산 꼭대기에 오른 이들은 한겨울 살을 에는 강풍을 맞으며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들은 ‘마음의 눈’으로 설산이 빚어낸 자연의 웅장함을 감상하고 있었다.
이들 시각장애 청소년과 비장애 청소년, 뉴질랜드 교포 청소년 등 20명으로 구성된 ‘2006 청소년 희망찾기 탐사대(대장 김영식ㆍ충주 칠금중 교사)’가 루아페후 정상 도전에 나선 것은 이날 오전 8시.
대원들은 해발 2,100㎙ 전진 캠프에서 아이젠과 스패츠, 방한모 등으로 중무장을 하고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만년설로 덮인 고산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폭설이 쌓여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데다 오르막 경사가 70도나 돼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구간이 수없이 이어졌다. 등반 경험이 없는 시각장애 청소년들에겐 불가능한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대원들은 서로 힘을 합쳐 한 발 한 발 내디뎠고, 결국 5시간여의 ‘사투’ 끝에 정상을 밟았다.
등반 중 탈진 증세를 보이기도 한 윤미양은 “옆에서 도와주는 비장애, 교포 친구들과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영식 대장은 “루아페후는 지난해 뉴질랜드 군인 10명이 동사했을 정도로 히말라야 고봉 못지않은 험준한 산”이라며 “불굴의 의지로 산을 정복한 대원들이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대원들은 산 정상에 각자 소원을 적은 타임캡슐을 정성껏 묻었다. 10년 뒤 다시 루아페후 정상을 밟아 자신들이 소망한 일이 얼마나 이뤄졌는지 확인해보자고 다짐하면서.
탐사대가 꾸려진 것은 5월초. 이 때부터 대원들은 저마다 체력 훈련에 비지땀을 흘렸다. 김지은(부평서여중 1)양은 매일 15층 아파트를 7번씩 오르내렸고, 이의정(중흥중 1)양은 동네 조기축구회에 끼여 축구로 다리 힘을 길렀다. 우진주(충주칠금중 3)양은 인공암벽 등반을 따로 배웠다.
탐사대는 출국 전 서울 도봉산과 충주 조령산 등지서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들이 합숙하며 시각장애인 안내 보행법을 익혔다.
탐사대의 활동은 교민 사회에서도 화제가 됐다. 식료품 회사인 한양유통(대표 이성훈) 직원들은 트럭에 쌀과 김치, 고기 등을 가득 싣고 공항에 나와 대원들을 격려해 주었다. 또 캠퍼밴 전문회사인 ㈜INL(대표 김태훈)은 캠핑카를 지원하고, 탐사 가이드를 자청했다.
탐사대 김종민 기획팀장은 “장애와 비장애, 교포 등 다양한 층의 또래 청소년들이 어우러져 도전 정신을 키우고 서로를 이해하는 무대였다”고 말했다.
와카파파 빌리지(뉴질랜드)=글ㆍ사진 한덕동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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