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 후에도 쉽게 자연상태로 분해되는 친환경 음식용기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A사는 우수한 기술력을 가지고도 자금 문제로 고민이 컸다. 업체 사장은 고심 끝에 거래하는 은행에 컨설팅을 의뢰했고 은행은 즉각 10여 명의 전문가를 파견, 한 달간 기업의 문제점을 집중 분석했다.
은행은 A사가 기업설명회를 열어 투자자를 구하도록 도와주고 친환경 용품을 우선 구입하는 군납업체와 서울대 병원 등을 소개해 거래선까지 터 줬다.
대기업의 인사, 재무 등 분야 자문은 주로 외국계 컨설팅 전문기업이 휩쓸고 있는 터라 은행이 컨설팅업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은행의 주요 컨설팅 대상은 대출고객인 중소기업. 대부분 연 매출액 100억원 미만의 제조업체로 따로 컨설팅을 의뢰할 여유가 없는 형편이다. 은행이 돈을 꿔 간 채무자에게 친히 경영 컨설팅까지 베푸는 이유는 거래기업의 경영이 잘 돼야 돈도 잘 갚고 더 많은 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행의 컨설팅은 전문 컨설팅기업과는 사뭇 다르다. 요청받은 분야가 아니라도 은행은 개선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진다. 자문 결과도 모범답안식보다는 따끔하면서도 고마운 충고가 많다. 1개월 이내 컨설팅은 아예 무료고 유료인 경우에도 전문컨설팅 업체의 10분의 1 수준만 받는 은행도 있다.
2004년 설립돼 지난해에만 110개, 올 상반기에도 50여 중소기업을 컨설팅한 우리은행 기업컨설팅팀이 24일 그 동안의 컨설팅 사례를 분석해 공개했다.
분석결과에 따르면 실패하는 기업은 대부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잘나가던 옛 시절만 그리면 현재에 안주하거나 경쟁자나 시장 상황에 둔감했다.
구심점 역할을 하는 직원은 없는 데다 사장은 하나부터 열까지 결정을 도맡았고, 경영보다 대외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재무사정이 어려워 경비절감을 할 때 가장 손쉬운 직원 복리후생비를 먼저 줄이는 바람에 직원들의 충성심마저 잃었다.
건축폐자재를 재활용해 에어필터, 냉동기 등 재생용품을 생산하는 B사는 자금 대부분을 연구개발에만 집중 투자한 나머지 오히려 매출이 오르지 않는 악순환을 겪고 있었다.
사업 아이템에 우선순위가 뚜렷하지 않다 보니 제품 개발팀들이 서로 다투기까지 했다. '선택과 집중'에 실패한 사례였다. 컨설팅팀은 기술은 좋지만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제품에 대한 투자비 10억원을 과감히 다른 제품으로 돌리도록 권고했다.
컨설팅팀 임동수 부부장은 "중소기업은 한 번의 컨설팅으로 재무나 마케팅 같은 부문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어려운 만큼 전문컨설팅사보다 거래은행의 지속적인 경영자문을 받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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