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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도박 공화국과 혁신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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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도박 공화국과 혁신 정부

입력
2006.08.24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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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성 성인 오락기 '바다이야기'를 취재하는 후배 기자가 바다이야기 게임을 직접 해봤다. 남의 체험담을 듣거나 기사만 읽고서는 '메모리 연타'가 뭔지, '예시'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어 가본 것이다. 아침에 만난 후배는 싱글벙글이었다.

게임 시작후 4분 동안 4만원을 오락기에 넣었는데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려 20만원어치의 상품권을 받았고, 환전소에서 18만원의 현금으로 바꿔 손에 쥐었단다. 순식간의 일이라 가슴이 떨리고 무섭기까지 했는데, 바로 그 맛 때문에 도박을 하는가 보다고 웃었다.

기자가 취재 목적으로 한 게임이었으니 망정이지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거나 삶에 희망의 빛이 잘 보이지 않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 이성적 판단이 힘든 청소년 등이 도박을 해서 돈을 땄다면 어떻게 됐을까.

도박으로 딴 돈을 금융기관에 맡기거나 생활비로 쓰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열 중 아홉은 18만원을 들고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성인 오락실로 갔을 것이다.

그리고 본전을 잃으면, 본전이라도 건지겠다는 심정으로 지갑을 탈탈 털어 또 도박을 하고, 그도 안되면 오기가 나 돈을 꿔서라도 도박에 매달렸을 것이다. 첫 승부의 작은 수확, 그것이 실은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자신을 끌어들인 악마의 유혹이었다는 것을 깨달아도 그것은 정신과 육체가 피폐해진 뒤의 일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도박 공화국'의 기운으로 충만하다. 경마장, 경륜장, 경정장, 내국인 전용 카지노 등이 전국의 '타짜'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성인 오락장은 주택가까지 파고들고, 인터넷 카지노ㆍ포커 등 온라인 도박은 안방을 유린하고 있다.

거기에 로또와 각종 복권까지. 아마 전 세계에서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도박이 성행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한해 동안 국내에서 검거되는 도박 사범만 3만4,000명. 과연 한국인의 유전자에는 도박을 좋아하는 인자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유독 우리 사회 시스템이 도박에 취약한 것일까.

삼성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인 이시형 박사는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도박 문화에 관대했다고 말한다. 겨울 농한기에 모이기만 하면 술과 노름이었고, 돼지꿈을 꾸면 복권을 사는 것처럼 도박에 거는 주술적 심성과 노름 빚을 져도 가족이 갚아주는 공의존(共依存)적 전통이 강했다는 것이다. 그런 문화와 환경 때문에 '이번만큼은!'하는 일이 잦다고 이 박사는 분석한다.

아무리 그렇다쳐도 정부와 산하기관, 지방자치단체까지 나서 전 국민의 도박꾼화를 부추기는 얼토당토않은 이 상황은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정부기관의 통계가 증명하듯 성인 오락실 이용자중 절반 가량이 월소득 200만원 이하의 저소득층, 소외계층 사람들이다.

게임산업 육성과 양극화 해소를 외치면서 게임과 도박을 구분하지도 못한 채 저소득층의 호주머니를 털어 그들을 헤어날 수 없는 빈곤의 수렁으로 던져버린 이 정부와 이전 정부가 개발독재 시대의 정부와 무엇이 다를까. 혁신 토론회다, 혁신 보고대회다 하며 정부 혁신 운동의 성과를 자화자찬하던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황상진 문화부장 직대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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