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약한 의지의 문제인가, 도박을 권하는 사회분위기의 문제인가.
온 나라가 바다이야기에 침몰하고 있다. 편법과 부정으로 ‘성인오락실’이 주택가를 파고든 사이 생계를 내팽개친 도박중독자들이 양산되고 있다. 도박은 습관이나 의지의 문제라는 시각이 많지만 의학적으로는 심각한 뇌의 질병이다. 도박중독의 실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 알아본다.
의지의 문제 아닌 뇌의 질병
도박중독은 충동조절 장애의 일종이다. 알코올, 마약중독과 마찬가지로 인생을 파괴하는 심각한 정신질환이다. 최근 마약, 알코올처럼 도박중독 쇼핑중독 사이버중독 등이 모두 한 뿌리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 뿌리란 바로 뇌 속 쾌락중추다. 뇌에서 쾌락, 충동을 담당하는 영역은 특정 자극이 있을 때 신경전달 물질인 도파민 등을 분비하고, 이 때 사람은 흥분과 만족을 느낀다. 그런데 도파민 분비량이 비정상적으로 많아 균형이 깨지거나, 충동을 담당하는 회로가 선천적으로 또는 어린 시절에 잘못 형성된 경우 문제가 생긴다.
중독상태에 빠지면 내성이 생겨 도박하는 시간과 판돈이 점점 커진다. 또한 금단증상이 나타나 일시적으로는 도박을 끊었다가도 초조하고 불안해 다시 도박장을 찾게 된다. 도박꾼들은 잃으면 “이번에는 딸 것”이라고 생각하고, 따면 “이번에도 딸 것”이라고 확신한다. 오직 과거에 크게 딴 경험과 기분만 기억한다. 도박중독은 금전적 손해뿐 아니라 직장과 가정을 잃게 만드는 등 사회적 후유증이 막대하다.
도박 합법적이면 중독자 많아
도박중독이 뇌의 질병인 것은 자명하지만 사회환경도 큰 영향을 끼친다. 일반적으로 도박중독자 비율은 전 인구의 1,2%이지만 도박이 합법적인 나라는 6,7%나 된다는 보고가 있다. 우리나라는 성인의 약 4%가 도박중독으로 조사된 적이 있다.
바다이야기와 같은 접근이 쉬운 오락실은 지금까지 도박중독과 거리가 멀었던 평범한 직장인과 여성, 청소년까지 유혹하고 있어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도박중독 끊을 수 있다
최근 도박중독 치료에 진전을 보인 것은 약물치료다. 원인에 따라 항우울제 또는 항갈망제가 처방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치료는 중독자들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교정해주는 인지행동 치료다. 특히 집단으로 시행할 때 효과적이다. 강북삼성병원 도박클리닉은 주1회 8주간 집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병원 치료가 끝났더라도 한국단도박친목모임(www.dandobak.co.kr)과 같은 정기 모임을 통해 장기적으로 재발을 막도록 해야 한다.
도박치료의 관건은 “내 인생에서 지켜야 할 것이 남아있느냐”는 것이다. 즉 도박 없는 생활이 더 큰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전에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결국 가족들이 심각성을 인식하고, 초기에 환자를 병원이나 상담소로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박 빚은 갚아주지 말고 중독자 자신이 계획을 세워 갚도록 해야 한다.
도움말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영철 교수
● 어떤 성격이 도박에 빠지나
스릴·경쟁 탐닉 자극추구형, 우울증 증상의 현실도피형
도박중독에는 심리, 환경, 성격적 요인이 모두 영향을 끼친다. 실제 도박클리닉을 찾는 환자들은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직업과 학력도 가리지 않는다. 다만 성격적으로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자극추구형과 현실회피형이다.
자극추구형 스릴과 호기심, 경쟁 등 자극을 추구하는 탐닉형 성격을 가리킨다. 무엇을 하든 "뿌리를 뽑는다"는 이들은 갈수록 강렬한 자극을 추구하다 중독에 빠질 우려가 있다. 이들은 도박 뿐 아니라 술, 약물 등 여러 가지 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자극추구형 도박중독자에게는 날트렉손과 같은 항갈망제를 처방하는 게 도움이 된다. 항갈망제란 알코올 중독자에게 처방되는 약들로, 도박중독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현실도피형 스릴을 즐기는 자극추구형과 달리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으로 세상 재미를 모르고 친구나 사회활동, 취미 등이 거의 없는 이들도 도박중독에 빠질 수 있다. 우울증에 가까운 이들에게 도박은 일시적인 항우울제, 또는 일시적인 도피처의 역할을 한다.
현실도피형 도박중독자에게는 항우울제를 처방하는 게 좋다. 하지만 어느 경우에도 약물은 중독을 끊을 수 있도록 하는 치료제가 아니라 중독증상을 약간 덜어주는 보조적 치료에 그친다. 이 밖에 반사회적 인격을 가진 범죄형 도박꾼이거나 정신질환으로 인해 도박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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