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게 내린 비에, 이어진 무더위로 정말 사람을 파김치로 만들었던 여름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 늦여름을 덜 지루하게 마감하기 위한 조촐한 이벤트는 어떨까? 바비큐 파티를 여는 거다. ‘바비큐’라고 하면 ‘헉!’하고 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잘 생각해보면 올 여름 한 번 정도는 다 해 보았을 일이다.
바비큐는 쉽게 말해서 ‘구워먹기’니까. 지난 여름에도 해수욕장 송림에 텐트를 치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기를 구워 자셨는가? 또, 우르르 모여 떠나는 펜션 여행에서 뒤뜰에 불 지피고 구워 먹은 감자는 얼마나 맛이 있었나? 그것이 다 바비큐다. 장작이나 숯에 불을 붙이고, 준비된 육류나 야채를 직화 구이해서 먹는 것. 주말에 가까운 근교로 나가든지, 옥상을 빌리든지, 한 뼘 베란다에 자리를 펴든지 해서 한판 구워보자.
<준비>준비>
바비큐를 위한 그릴을 장만할 수만 있다면 제일 좋겠다. 대형 할인마트에 이 때쯤 가면 여름용품이나 여행용품을 세일 가격에 살 수 있으니 참고해 보자. 테이블 높이의 그릴로부터 밥 솥 만 한 컴팩트 형까지 다양하게 나와 있다. 여기에 불 붙이기 쉽게 나온 잘잘한 숯 한 봉지 사서 불길을 이끌어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숯 사이사이에 향이 좋은 나뭇가지를 간간히 떨궈 두면 가만히 타들어가면서 은은한 향기가 식재료에 밴다.
한두 번 구울 것을 뭐 돈을 들이냐 싶으면 그냥 휴대용 가스버너를 사용해도 괜찮다. 단, 숯이나 나무로 피우는 불에 비해 운치가 떨어지고 결정적으로 ‘향’의 깊이가 달라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 기름을 변형 시키는 방법이 있긴 하다. 올리브기름을 많이 먹는 이탈리아 인들의 주방을 보면, 갖은 모양과 크기의 기름병에 올리브유를 담고는 통마늘이나 허브, 고추 등을 넣고 보관하여서 ‘향 기름’을 쉽게 만들어 쓴다. 평소에 식용유나 올리브유를 병에 담고 통마늘이나 칠리 고추, 통 양파나 허브 등을 넣고 밀봉하여 색다른 향을 풍기는 기름을 만들어 두자. 숯 냄새는 아니더라도 통마늘 향이 확 퍼지는 바비큐 구이를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수입 식품점에 들러보면 ‘훈제 향’이라고 쓰인 첨가제를 살 수가 있는데, 소스처럼 사용되는 일종의 요리 트릭이다. 고기를 굽기 전이나 굽는 도중에 살짝 발라주면 제법 나무 태운 냄새가 솔솔 난다. 이도 저도 다 아니면 기름을 두른 팬에 얇게 썬 마늘을 왕창 볶다가 건져 내거나 종종 썬 베이컨을 볶다가 건져 내거나 해도 팬 바닥에 향은 밴다.
<고기>고기>
바비큐에 어울리는 육류란 딱히 정해진 것은 없다. 내가 좋아한다면, 야채든 어패류든 구우면 그만이다. 단, 한 가지 명심할 것은 닭고기나 돼지고기와 같이 완전히 익혀 먹어야 하는 종류들을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 두 종류의 고기는 소고기에 비해 비교적 양념에 재워 준비되는 경우가 많은 편. 매콤한 닭이나 고추장 돼지 불고기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양념한 돼지나 닭을 굽다 보면 잘 탄다. 게다가 속은 아직 덜 익은 채로 겉만 타는 경우가 많다. 해결책은? 작게 썰어 꼬치로 꿰든가 미리 한번 익혀서 준비하는 것. 겉만 슬쩍 익혀서 양념이 고기에 착 달라붙게 하고는 바비큐 현장에서 다시 구워 속까지 익히는 방법이다.
아니면 작게 썰어 꼬치에 꿰어 익혀서 겉도 속도 빨리 익도록 하는 방법. 양념을 소스처럼 따로 마련해 두었다가 소금, 후추만 뿌려서 구운 닭이나 돼지를 나중에 찍어 먹도록 준비해도 재미있다. 특히 돼지고기는 와인 삼겹살처럼 월계수 잎을 띄운 와인에 재우거나 매실주에 재웠다가 구우면 향기가 솔솔 난다. 그런 다음에 참기름 장이든, 고추장 소스든 골라서 찍어 먹도록 하면 바비큐 파티의 손님들이 감탄을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바비큐에 양고기를 추천하는 바인데, 일단 그 구워지는 향기가 이국적어서 여름 내 여행을 못 떠났다면 더 반가울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덤으로 고기 자체가 스태미나에 아주 좋은 강장 식품이기 때문에 늦여름 체력보강을 확실히 할 수 있기도 하고.
양고기나 소고기는 ‘레드 미트(red meat)'라 불리는 일명 ’붉은 살코기‘류로, 레어(덜 익혀 먹는 것)-미디엄(중간 쯤 익혀 먹는 것)-웰던(바짝 익혀 먹는 것)으로 그 굽기를 조정할 수 있는 식재료다.
즉, 속이 좀 덜 익어도 먹을 수 있는 고기들이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 갈비나 소고기 안심을 큰 덩어리로 턱 얹어 구워도 무방하다. 덜 익혀 먹는 이들은 우선 썰어주고, 좀 더 익혀 먹는 이들은 그 다음 썰어주고, 다시 고기를 불에 올렸다가 완전히 익으면(그 사이에 고기의 부피가 줄어들어 점점 더 빨리 익게 된다) 나머지 손님들을 대접하면 된다.
소고기는 갈비 양념을 연하게 해서 재웠다 굽거나, 간장소스나 참깨와 일본 된장으로 만든 샤부샤부 소스를 준비하여 찍어 먹게 하면 별미다. 양고기는 지방을 잘 제거한 다음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해서 굽는데, 고기 냄새가 영 어색한 사람들은 고기 겉면에 카레 가루를 톡톡 두드려 구워주면 좀 낫다. 양고기와 어울린다고 일전에 소개했던 큐민이나 기타 향신료를 준비해서 찍어 먹거나, 통후추를 으깨서 찍어 먹으면 상당히 이국적인 풍미를 즐길 수 있다.
마무리로는 볶음밥을 준비하는데, 미리 한번 볶아 둔 밥을 바비큐 현장에서 호일을 접어 접시 형태로 만들어 담고 불 위에 올리기만 하면 그만이다. 김치 볶음밥이나 마늘 볶음밥은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두루 어울리고, 사프란을 넣은 향신료 볶음밥은 양고기와 잘 어울린다.
EBS 요리쿡 사이쿡 진행자 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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