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에 사는 친구가 놀러 왔다. 그 친구 덕분에 재즈클럽엘 가게 됐다. 타악기의 거장이라는 류복성씨가 그곳에 출연한다는 근황을 듣고는 꼭 만나 뵙고 싶다는 것이다. 대학에 다닐 때 그분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치근대는 한 외국인 손님을 류복성 씨가 혼내준 얘기를 하며 친구는 깔깔거렸다. "타악기를 한 사람이라서 손이 정말 빨라. 다다다다닥 뺨을 때리는데, 덩치 큰 외국인이 정신을 못 차리는 거야."
하얗게 센 머리를 짧게 깎은 노인이 얼룩무늬 해병 차림으로 비틀거리며 무대에 섰다. 좀 걱정이 됐는데, 굳이 비틀거리지 않을 필요를 못 느껴 그랬다는 걸 곧 알았다.
낡아 보일 정도로 길이 난 팀파니를 중심으로 그는 별별 리듬악기를 갖고 놀았다. 무대 바닥에 널린 더미에서 뭔가를 골라들어 어떤 건 흔들고 어떤 건 두드리고, 비비고 부딪치고 긁기도 했다. 손자뻘의 어린 뮤지션들과 애정에 찬 눈짓을 주고받으며.
리듬악기만으로도 홀릴 만했지만, 관악기가 합류하자 익숙한 세계로 돌아온 듯 편안했다. 사실 지루한 시간이 되리라 각오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영영 끝나지 않을 듯 이어지는 재즈를 종종 듣고 싶을 것 같다.
시인 황인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