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한 외로운 수학 천재 이야기'라는 긴 제목의 소설이 있다. '골드바하의 추측'이라는 수학문제를 푸는데 평생을 바친, 페트로스라는 수학 천재의 이야기이다. 실재했던 수학천재들이 많이 등장하고 해박한 수학지식을 바탕으로 씌어졌기 때문에 주인공 역시 실존인물인 것처럼 읽히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 세속적 가치 거부하는 정신
개인적 편견이지만, 상아탑이라는 성격에 가장 잘 어울리는 학문은 수학이 아닌가 한다. 수학만큼 확실하고 단순하고 아름답고 순수한 학문이 달리 없을 듯하고, 그래서 수학자가 가장 학자다운 학자일 것 같다. 소설 '수학천재 이야기'의 주인공도 그런 인물이고, 또 그 소설 속에 등장하는 유명한 수학자들의 삶도 대체로 그러하다.
그들은 세상의 권력, 돈, 지위, 처세 등등에 대한 감각이 백치에 가깝고 그 대신 오로지 모든 에너지가 수학적 추론에만 집중되어 있는 인물들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연필 한 자루와 종이 한 장만으로 영구불변의 진리를 단순한 수식으로 풀어낸다.
세상으로부터 숨어버린, 러시아의 천재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도 소설 '수학천재 이야기'의 주인공과 흡사한 인물인 것 같다. 그는 수학계의 7대 난제 중의 하나인 '푸앵카레의 추측'이란 문제를 풀어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큰 상과 상금도 받을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작년 12월 러시아의 한 연구소에서 실직을 당한 후, 세상을 등지고 노모와 함께 아주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세속적인 명예와 부와 지위를 얼마든지 누릴 수 있음에도 그는 가난하고 외로운 은둔자의 길을 택했다.
페렐만의 은둔 사실은 영국의 한 언론사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국보 대접을 해줘야 마땅할 천재 수학자인 페렐만을 실직하게 만들고, 노모의 연금으로 가난하게 살도록 내버려둔 러시아 사회의 무심함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우리나라였으면 페렐만은, 자신의 의지와는 별로 상관없이, 매일같이 매스컴의 집중 공격을 받는 대중스타가 되었을 것이고 또 각계로부터 돈과 지위를 보장받았을 것이다.
한 천재를 외로움과 가난 속에 방치해두는 사회도 문제이지만, 그를 대중스타로 만들어 학자로서의 조용한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사회도 문제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대중의 열풍이 모든 것을 녹여버린다. 예술과 학문마저도 대중을 무시하거나 대중의 눈길을 끌지 못하면 견디기 힘든 것 같다.
하나의 열풍이 몰아치면 다른 것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월드컵의 열기가 그러했고, 황우석 사태가 그러했다. 영화 '괴물'의 열풍이 몰아치자 다른 영화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영화감독 김기덕씨가 한국의 관객들에게 실망을 느끼고 영화계를 떠나고 싶다고 말한 것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 '대중'이 모든 것 녹여버리는 한국
그러나 예부터 예술가들과 학자들은 세속의 가치와 관심으로부터 소외당한 예들이 많다. 그런가 하면 스스로 은둔과 소외를 선택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 예술가들과 학자들이 곳곳에 숨어서 숨막히는 세상의 공기를 정화시켜주고 있는지 모른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보다 절실한 것은 대중을 열광시키는 에너지가 아니라 대중스타가 되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정신이 아닐까?
김기덕씨 감독도 자신의 작품을 몰라준다고 불평하기보다는, 대중들의 수준과 변덕을 무시하고 고고하게 자신의 작업에 열중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돈과 명예 그리고 무엇보다 매스컴의 조명으로부터 자유로운 학문과 예술과 인간이 그립다. 그런 점에서 수학천재 페렐만의 은둔 소식은 신선하다.
이남호 문학평론가ㆍ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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