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20일 대북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근자에 보기 드문 대규모였다. 북한의 수해 피해 규모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대북 민간지원단체의 역할도 컸다. 하지만 숨은 주역의 하나가 한나라당임을 간과할 수 없다. 스스로 나서서 정부에 대해 지원을 촉구했다. 아니 국회 차원에서는 지원을 주도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 정부여당과 차별성 없는 정책
한나라당의 변신은 그 이전부터 준비되었다. 올 1월에는 당의 정강정책을 대수술했다. 대북정책 부문에서는 "호혜적 상호공존 원칙에 입각한 유연하고 적극적인 통일정책 … 남북한의 공동발전을 도모함 … 진취적인 교류협력과 인도적 지원을 확대"한다는 구절을 삽입시켜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대북정책에 대한 한나라당의 고민이 깊어져감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두 번의 대선에서 패배한 경험이 당의 지지자층 확대가 핵심 과제라는 인식을 낳았다. 이번의 인도적 지원 주도도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되면 자신들이 그토록 비난하고 부정했던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이다. 딜레마적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한나라당 입장에서 보면 대북정책은 아킬레스건이다.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은 무엇인가. 김대중 정부가 포용정책을, 노무현 정부가 평화번영정책을 내놓았다면 한나라당은 무엇을 내놓았는가. 이 지극히 단순한 물음에 한나라당은 무려 8년 동안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의 대북정책과 진보의 대북정책은, 이론상으로는 180도 달라야 하지만 현실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이념적 간극에 비해 정책적 간극이 상대적으로 적은 분야가 바로 대북정책이다. 국민들의 표로 먹고 사는 정치인, 정당이라면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국민들은 생각만큼 간단치 않다.
무엇보다 남북관계의 이중성, 특수성이다. 남한 국민은 북한에 대해 적대의식과 함께 동포의식을 가진다. 개인주의는 확대되지만 민족주의는 세계적 수준이다. 통일에 대한 강한 지향성도 여전하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적대적ㆍ압박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다? 표 떨어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릴 것이다. 동시에 현재의 남북관계 수준을 의식해야 한다. 낮은 수준임에는 틀림없지만 남북관계는 과거보다 진전된 것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스스로 나서서 남북관계를 후퇴시킨다? 정치적 자살이다.
대선 국면에서 한나라당이 내놓을 대북정책은 현 정부 것을 왕창 바꾼 것이 되기는 어렵다. 물론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복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어딘가에서 절충점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차 하면 죽도 밥도 아닐 수 있다. 포장은 그럴싸해도 앞뒤가 맞지 않거나 탁상공론에 불과한 미숙아가 나올 수 있다.
● 대선 국면에 딜레마 극복이 과제
문제는 한나라당 스스로가 과거에 했던 말들이다. '퍼주기'론을 최대의 무기로 삼아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지속적으로 '안티'를 외치면서 형성된 자신들의 이미지이다. 그런데 자신들의 대안은 생각만큼 선명하지가 않다. 현 정부와의 차별성이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말 모양 우습게 될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덫'에 걸리기 십상이다.
한나라당이 집권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면 이제부터라도 말을 아껴야 할 것이다.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덮어놓고 비판만 해댄다면 부메랑이 되어 자기에게 되돌아올 수 있다. 지금까지는 정부여당의 발목만 잡았지만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들어가면 자신들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그야말로 소탐대실인 것이다.
양문수ㆍ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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