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잠식 상태로 적자를 면치 못하던 상품권 발행업체들이 수십조원대의 상품권을 발행할 수 있었던 데는 허술한 상품권 지급보증 및 발행 제도도 큰 몫을 했다. 상품권 발행사업은 돈 한 푼 없이도 대량의 상품권 발행이 가능한 ‘땅 짚고 헤엄치기’식 사업이었던 것이다.
현재 상품권 발행사들의 상품권 발행한도액은 서울보증보험에 제공한 담보액수의 5배 정도다. 그러나 관련업계에 따르면, 상당수 상품권 발행사들이 서울보증보험에 자기자금을 담보로 제공한 것이 아니라 상품권 발행으로 회수한 돈을 담보로 제공하는 방식을 통해 상품권 발행한도를 단계적으로 증액해 간 것으로 확인됐다. 상품권 발행업체인 A사 관계자는 “처음 50억원을 담보로 제시한 후 그 비율에 맞게 상품권을 발행한 뒤, 상품권 발행을 통해 들어온 돈을 다시 담보로 제공해 상품권 발행한도를 1,000억원대로 늘렸다”며 “다른 업체도 다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결국 상품권 발행업체로 지정만 되면 자기자본금이 거의 없더라고 대량의 상품권을 찍을 수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발행사가 서울보증보험에 50억원을 담보로 제공하면, 보증보험은 2.5배인 125억원의 지급보증서 써주며 이를 한국게임개발원에 제출하면 그 두 배인 250억원을 발행한도액으로 승인받을 수 있다. 발행업체는 상품권 발행으로 250억원의 현금을 회수할 수 있는데, 이를 다시 담보로 제공하게 되면 발행한도액이 재차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올 7월말 현재 상품권 발행업체 19개에게 승인된 상품권 발행한도액은 1조183억원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업체들이 상품권 발행에 대한 근본적인 지급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상품권 시장이 부실화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상당수 업체들이 자기 자본금이 없었지만, 이 같은 방식으로 담보금을 늘려 발행한도를 증액시켰다”며 “상품권 현금 상환 요구가 빗발치면 이들 업체들이 감당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보증보험 관계자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담보금의 성격이 아니라 상품권에 대한 지급 능력”이라고 해명하는 한편, “지난해 발행한도액 증액은 게임산업개발원이 승인해준 뒤 우리는 사후적으로 재무 상태를 보고 지급보증액을 늘리는 역할을 했을 뿐”이었고 말했다. 발행한도액을 승인해주는 게임산업개발원 관계자는 “당시 담당자가 없어 발행한도액 증액 과정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상품권 발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업체별로 상품권 발행한도가 정해져 있지만, 상품권 유통시장에서 상품권 회수분 만큼 재발행이 가능해 무한대의 상품권을 찍어낼 수 있는 것이다. 1,000억원의 상품권 발행한도를 가진 업체의 경우, 일 주일만에 300억원이 유통돼 회수되면 다시 그 300억원만큼 새로 찍어 구권과 교환해주면서 수수료 차익을 챙기는 방식이다.
19개업체의 상품권 발행한도액이 1조183억원이지만 지난해 8월 이후 지금까지 30조원의 상품권이 발행됐던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상품권 발행업체들은 자기자본금이 거의 없더라고 1,000억원대의 상품권 발행한도를 승인 받아 수조원대의 상품권을 굴리면서 수수료 차익을 챙겨왔던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상품권 발행업체 중 4개 업체가 자본 잠식 상태에 빠져 있었고, 다른 업체들도 적자를 면치 못하는 부실기업들이었지만, 부실한 심사와 기형적 구조로 인해 수조원대의 상품권을 찍을 수 있게 됐다”며 “이렇게 손 쉽게 큰 돈을 굴리며 돈을 벌 수 있는데 누가 끼고 싶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같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사업을 지급 보증해주고 승인해준 서울보증보험과 한국게임산업개발원에 상당한 로비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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