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사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국국어교사모임이 공동 주최하는 ‘문장 청소년 문학상’ 7월 시 부문 장원에 설동환(경신고)군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가 뽑혔다. 이야기글 부문에는 권수진(정화여고)양의 ‘지구동물원’, 비평ㆍ감상글 부문에는 박준태(동래고)군의 ‘낸시랭-나르시시즘의 전도사’, 생활글 부문에는 강푸른(목포 혜인여고)양의 ‘후회와 얼룩’이 각각 장원으로 뽑혔다. 당선작은 ‘문장’ 홈페이지(www.munjang.or.kr)에서 볼 수 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 그래도 지구는 돈다? / 설동환(경신고 3)
안방에서 어른들 고스톱 하는데에 마른 오징어다리가 먹고싶어서 갔다. 그래도 설날이라고 작은아버지 와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요놈 귀엽다며 이거 한번 마셔 보라 한다. 애한테 무슨 술이냐는 아버지의 말에 이건 형이 먹는 포도맛 나는 소주가 아니라 30년산 발렌타인이라며 남자가 이 정도는 먹어야까지 듣다가 오렌지주스가 마시고 싶어서 부엌으로 갔다.
오렌지 주스는 달처럼 컵 속에 박혀있었다. 문득 오늘은 달에다 소원 비는 날이라고 했던 삼촌의 말이 떠올라서 창가로 가려는데 나보다 먼저 액자에 걸린 수염 덥수룩한 사내가 창 밖의 달을 바라보며 고개 숙이고 있었다.
오렌지주스 같은 달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사내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아버지가 웃으면서 말해줬다. 본적도 없으면서, 달에는 곰보자국이 많다고 한다. 팔광에 프린트된 동그라미를 노려보며 입맛을 다시는 어른들 하늘에는 그보다 더 큰 달이 떠있어요. 오늘은 기도하는 날이란 말이에요. 예수그리스도 말고 달님한테
라고 말하니까 얘들은 저리가 놀라고 한다. 포도맛 나는 소주가 아닌 30년산 발렌타인을 마시고 헤롱헤롱거리는 큰아버지를 보고 처음으로 지구가 돈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은 지구의 자전영향을 받아 비틀거리고 있었고 나는 아직 어려서 지구의 어떤 자전과 공전궤도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삼촌의 골방으로 갔다.
내가 더 어렸을 적 삼촌은 굉장히 셌다. 언젠가 애인을 구하려다 조직원 15명에게 쫓기던 삼촌은 갈비뼈가 으스러졌다. 병원에서 갈비뼈 제거 수술을 받고 온 삼촌에게 하와는 어딨냐고 물어보자 삼촌이 울었다. 평생을 약속한다던 하와는 검은 차를 타고 가버렸다. 신부가 아름다웠다며 돌아온 삼촌은 지독히 검은 망원경을 사갔고 지독히 컴컴한 골방에 앉아 지독히도 어두운 우주를 바라 보았다. 삼촌은 견우성과 직녀성을 바라보며 칠석날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날은 까마귀 까치 같이 시커먼 놈들이 나타나서 베틀 짜던 아름다운 처녀와 성실한 목동이 일 년에 한번 만나는 날이라고 하지만 어른들은 그것은 베가와 알타이르고 여름하늘 가장 밝은 일등성이라고 했다.
하지만 난 달에 난 곰보자국을 본 적이 없었다. 정월 대보름날 고스톱 말고 저 번에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어쨌다는 잡설 말고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 비는 사람은 삼촌뿐이었는데 아무도 삼촌의 말은 믿지 않았다. 달이라고는 팔광에서나 보던 사람들이
선악과를 따먹은 죄가 그리도 큰 것인지 삼촌의 골방으로는 그날 사과 한조각도 들어오지 않았다.
<심사평> 심사평>
설동환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다루는 솜씨나 일상이야기를 극적으로 전개해나가는 솜씨가 좋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중요한 몇 가지 시 이미지 술-달-예수-자전과 공전-망원경-하와-선악과-사과 등이 서로를 꽉 결박하여 연상의 연결고리가 둥글게 잘 이어졌습니다. 상상력과 진정성, 이야기, 구성이 고루 균형을 이룬 경우입니다. 다만, 산문시에서 꼭 필요한 압축에 좀더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이윤실 (시인, 글틴 게시판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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