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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변의 여인 "영화 속 인물 반은 배우 안에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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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변의 여인 "영화 속 인물 반은 배우 안에 있는 것"

입력
2006.08.23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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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시간보다 30분 늦게 나타난 홍상수 감독은 악수를 청하며 느릿한 말투로 미안함을 전한다. 인사동을 가로질러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인터뷰 장소로 유유히 걸어가는 감독의 뒷모습이, 세간의 평가에 개의치 않고 11년간 그의 영화가 보여준 모습과 어딘지 닮아 있다.

시사회 반응이 좋다고 운을 떼자, “아직도 관객 반응이 궁금합니다. 주변 친구들은, 일을 같이 했으니까 평가에 객관적일 순 없죠”라며 대중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중은 그의 영화에 여전히 ‘홍상수 표’란 딱지를 붙인다. 작가주의 영화라 어렵고 지루하다는 것이다. 이런 평가에 대해 “그건 기자들이 만든 편의적인 구분 아닌가요?”라며 반문한다. “대중과의 소통도 제게 중요한 명제이죠. 능력 있는 감독이라면 잘 해낼 텐데….”라며 겸손해 한다.

‘해변의 여인’은 한 남자와 두 여자의 하룻밤 로맨스다. 영화감독 김중래(김승우)는 시나리오를 구상 중이나 좀체 글이 써지지 않는다. 미술 감독 창욱(김태우)에게 여행을 제안하고, 창욱은 자신의 애인 문숙(고현정)을 데려온다. 세 남녀가 도착한 곳은 서해안의 한 해변. 그곳에서 중래와 문숙은 서로에게 끌리고, 급기야 동침을 한 뒤 다음날 서울로 돌아간다. 이틀 후 다시 그곳을 찾은 중래는 문숙과 닮은 선희(송선미)에게 접근하고 하룻밤을 보내는데, 문숙도 그날 서해안으로 내려가 중래를 기다린다.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와 같은 전작이 그런 것처럼, ‘해변의 여인’도 연애의 속물 근성과 내숭, 집착 등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가운데서도 전작과 다른 점이 두드러진다. 고현정은 천연덕스럽게 “일단 자야지 애인 아닌가요?”라는 대사를 던지며 능청스러운 연기를 선보이고 다른 배우들도 호연을 펼친다. 여전히 노골적이지만 웃음을 계속 유발하는 상황을 동반하며 시종 유쾌한 분위기다.

그 때문일까. 영화는 그의 첫 ‘15세 관람가’ 작품이다. “이제껏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은 건 당연해요. 청소년들이 제 영화를 공감하기엔 무리니까. 근데 등급 같은 건 고려한 적이 없어요.” 그는 “사람들은 고현정 때문에 수위를 조절한 것 아니냐고 묻지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노출 수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어요”라고 말한다.

홍상수 감독과 고현정, 김승우의 조합도 의외다. 그러나 이 색다른 조합은 영화에서 시너지 효과를 냈고 일단은 성공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는 이 대목에서 “현장에서 배우와 대화하면서 얻은 인상을 바로 시나리오에 반영하는 편”이라며 “영화 속 인물은 제가 그린 게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배우 안에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고현정의 연기가 돋보인 장면을 꼽아달라고 하자, “전부”라는 싱거운 대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영화의 중심 축이 중래(김승우)에서 문숙(고현정)으로 옮겨가는 것을 보면 홍 감독이 고현정의 재능을 높이 산 건 분명해 보인다.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특별한 주제는 없다”면서도 이렇게 부연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는 식의 강박에 사로잡힌 듯 해요. 성공한 사람이라고 해서 남다른 원칙이 있는 게 아닌데…그러한 일상 속의 강박으로부터 한 발 물러나 자신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홍 감독은 “저도 사람이니까 조금씩 변하는 거겠죠. 작품을 계속하면서 그런 것들이 영화에 묻어 나는 것 같고. 대중에게 좀 더 쉽게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에요”라고 말한다. 아직 작가주의라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그것을 넘어 대중과 쉽게 소통하려는 그의 느린 발걸음의 흔적이 바로 ‘해변의 여인’이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사진 배우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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