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의 사람들에게 정신병자 취급 받는 예술가가 되기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 ‘취화선’의 한 장면을 기억하는가? 지붕 위에서 술 취한 채 난동을 피우는 장승업에게 지나가던 선비가 한마디 한다. “이보게! 예술가는 꼭 그래야만 예술가인가?” 물론 이것은 옳은 충고다. 폐인처럼 생활을 한다고 해서 진짜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이러한 각오로 덤비는 예술가는 절대 흔하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동시에, 그 운명을 받아들인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어떤 재능을 가졌는지 알아보는 작업은 어려서는 부모님이 해주시지만, 사춘기 이후에는 우리 스스로 끝없이 갈등하며 운명에 물음표를 던진다. 이러한 호기심은 고약하게도 나이가 들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내가 가진 재능에 어긋나는 것은 아닐까? 혹시 내가 다른 분야에 더 특출한 재능이 있는데 그것을 찾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인생이 정말 초콜릿 상자와 같은 것이어서 우연히 손에 잡힌 대로 사는 것은 아닐까?
만약 당신이 진정한 예술가의 재능을 선물 받았다면 어떨까? 우연히도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다면? 우리가 원하지 않는 위선적인 문화의 해답들이 하나씩 찾아지고,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작은 희망이 당신의 능력 안에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어찌할 것인가? 그렇다면 그 재능을 활용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대하여 ‘죄’를 범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재능과 운명을 확인한 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행운이든 불운이든 말이다. 나는 음악을 중도에 포기했었고 끝없이 다른 삶을 체험하기 위해 방황했다. 예술 자체가 싫었던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삶에 회의를 느꼈던 것이다. 어릴 때 생각하던 예술가의 모습은 테크닉에 과열된 경쟁과, 현실에서 거부할 수 없는 경제적 불안, 예술계의 부조리들로 이미 더럽혀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그 곳에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진짜 인생이 여기에 있음을 남들보다 뒤늦게 알고야 말았다. 이제 다시 진정한 나로 돌아왔다고 확신한다.
예술가라고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도 세상의 부귀영화를 포기할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회와 타협하며 안정된 직업으로 살아가길 원한다. 그들은 자기들 대신에 누군가가 ‘겉 모습’ 뿐이 아닌 진짜 예술가가 되어주길 원한다. 나에게 만약 그런 운명이 주어진 것이라면, 그렇게 살아가려고 한다.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조윤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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