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체인지업! 가계부'
잠은 한달 95만원 하는 호텔형 레지던스에서, 몸매 관리는 회당 20만원하는 개인 트레이너에게. 8개월간 구입한 옷만 380벌. 인기 연예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SBS ‘체인지업! 가계부’에 출연한, 수입은 드라마나 영화 보조출연으로 버는 일당 3만원뿐인 한 여성 연예인 지망생의 씀씀이다.
방송이 나가자 시청자 게시판에는 “진짜 ‘된장녀’의 실체를 봤다”는 식의 비난이 줄을 이었다. 비상식적인 과소비 행태에 비난이 이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정말 비상식적인 것은 제작진이다.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에게 절약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는 취지로 제작됐지만, 정작 ‘솔루션’을 제시할 의지는 없다. 프로그램의 절반은 출연자가 얼마나 황당한 과소비를 하는지 조목조목 보여주고, 남은 분량동안 10일간 9만원으로 버티기, 연예인들의 조언 듣기 같은 것이 솔루션의 전부다. 그러니 출연자는 시종일관 생글거리며 “많은 것을 느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시청자들은 변하지 않은 것 같은 출연자에 더욱 분노한다. 정말 강도 높고 현실적인 솔루션으로 출연자의 진정한 변화를 그렸다면 반응은 달랐을 것이다.
SBS ‘긴급출동! SOS24‘, ‘실제상황 토요일’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사생활 침해 등 문제에도 불구하고 해결책만큼은 확실하게 제공했다면, ‘체인지업! 가계부’는 솔루션 과정 대신 과소비 행태를 자극적으로 보여줘 시청자들이 그들을 손가락질 하게 만든다.
능력 없이 사치 하는 여성을 뜻하는 ‘된장녀’가 화제가 된 순간 이런 내용이 방송된 것이 단지 우연일까. ‘체인지업!’뿐이 아니다. 된장녀가 논란이 되자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 명품 밝힘증’ ‘가짜 명품에 속는 사람들’ 같은 소재를 다루고, 드라마에서는 재벌2세와의 결혼이 꿈인 여자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한다.
물론 허영에 빠진 사람들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은 근본적인 원인이나 해법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남는 건 ‘체인지업!’ 처럼 그 대상이 된 사람들에 대한 비난뿐이다. ‘체인지업!’ 같은 ‘솔루션 없는’ 솔루션 프로그램의 등장은 방송이 이제 사회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솔루션’도 내팽개친 채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기 쉬운 선정적인 대상을 보여주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강명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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