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키다 유키코(浴田由紀子ㆍ56). 일본 야마구치현 태생.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산하 ‘대지의 어금니’ 부대 구성원으로서 미츠이물산 건물 등을 폭파했다. 1975년에 체포되었으나, 77년 일본 적군파가 벌인 투쟁이 일본 정부를 굴복시킴으로써 석방되어 해외로 나갈 수 있었다. 95년 루마니아에서 다시 체포된 후, 일본으로 연행되어 징역 20년 형을 받았다. 2017년 3월에 출옥 예정으로 현재 토치기형무소에 수감 중이다.
74년에 결성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무정부주의에 기반을 둔 반제국주의 및 반일 이념의 무장투쟁 조직으로, 70년대 중반 연속적인 기업 폭파 사건을 일으킨 바 있다.
특히 74년 8월 30일 도쿄 시내에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빌딩 정면 현관 앞에서 ‘이리’ 부대가 장치한 시한폭탄이 터졌고, 10월 14일에는 ‘대지의 어금니’ 부대에 의해서 미츠이물산이, 12월 23일에는 ‘전갈’ 부대에 의해서 카시마건설 등이 폭파되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이리’ 부대의 다이도오지 마사시(大道寺將司)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사형 판결을 받아 현재 사형수로 복역 중인 상태이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측의 주장에 의하면, 폭파 대상이 된 기업들은 70년 초반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신식민주의적 경제 침략을 수행하거나 군수 물자를 생산하고 있어서 선택되었다고 한다. 특히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폭파 대상에는 당시 도쿄 시내에 위치한 ‘한국산업경제연구소’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연구소는 ‘일제 기업의 한국 대만 말레이시아 경제 침략에 봉사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재현(이하 현) 에키다씨는 형이 확정된 이후에 가족을 제외하고는 접촉이 일절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가상 인터뷰를 청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결성 과정에 대해 말씀을 해주시지요.
에키다 유키코(이하 유키코) 73년에 김대중 납치사건과 칠레 군사 쿠데타가 있었고 제4차 중동전쟁이 터졌지요. 그리고 그 다음해에는 일본의 다나카 총리가 동남아 순회 방문을 했는데, 현지에서 격렬한 반일 데모가 일어났어요. 일본 좌파의 직접 행동세력은 72년 무렵부터 퇴조기를 맞이하고 있었는데, 도리어 바로 그 즈음에 우리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 결성된 거지요. 그 전에 우리 구성원들 일부는 ‘베트남반전 직접행동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했지요.
현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사람들이 미쓰비시중공업 등을 폭파하려고 한 이유는 뭔가요?
유키코 태평양전쟁 이후에도 계속 자행되고 있는, 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침략, 즉 경제 침략과 신식민지주의 지배를 저지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전쟁 후에도 계속되고 있던 일본 제국주의 체제를 해체하는 것이 목표였지요. 또, 우리는 히로히토 천황이야말로 침략전쟁인 태평양전쟁의 최종 책임자이며 일본 제국주의 체제의 정점에 위치한 것으로 보았어요, 그래서 ‘무지개작전’이란 이름으로 천황이 탄 열차를 폭파하려고 했다가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아서 결행 직전에 중지해야만 했어요.
현 오늘날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사상과 투쟁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서 아주 서로 다를 수밖에 없을 텐데요. 어쨌거나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구성원들은 말로만이 아니라 실천적 행동을 통해 자신이 제기한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했었다는 데 가장 큰 특징이 있는 거로군요. 특히,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아시아 연대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사상적이고도 실천적인 활동이 이미 30여 년 전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한국 사람으로서는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유키코 ‘한국 사람’이라는 말은 문제가 될 수 있는 단어로군요. ‘일본 사람’인 우리가 조직의 이름에 ‘반일’을 내세운 것은 이념적, 실천적인 필연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는 만주전쟁,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일본 제국주의가 일으킨 군사적 침략전쟁이 전후에는 경제적인 침탈로 이어진다고 보았던 거지요.
태평양전쟁은 일본의 군부와 재벌이 천황제 아래에서 서로 결탁을 해서 벌인 것이고 미쓰비시중공업 등은 전쟁 전에는 대표적인 군수산업체였지요. 이상적으로 말한다면, ‘한국 사람’ ‘일본 사람’ ‘중국 사람’이라는 규정을 넘어서야만, 아시아 전체의 참다운 평화와 발전이 성취되는 것이겠지요.
현 대개의 경우, 좌파는 여전히 국민국가라든가 민족주의라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적지 않은 나라의 좌파 세력이 보여준, 자기네 나라의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에 대한 무기력한 대응을 염두에 둔다면,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사상적, 실천적 수준은 거듭 말하건대 경탄스러운 것입니다. 게다가 오늘날 고이즈미 총리와 같은 일본의 우익 정치 세력이 諛炷岵막?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함으로써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일본 제국주의 역사를 미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자면,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활동은 경이롭기 조차합니다.
유키코 한국의 많은 언론 매체들이 일본의 우경화 운운하면서 고이즈미의 신사 참배를 피상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에도 실은 문제가 있어요. 고이즈미의 신사 참배는 기본적으로 신보수주의적 정권의 불가피한 정치 전략인 거죠.
현 신보수주의란 뭐죠? 예컨대 신자유주의와는 뭐가 다른데요?
유키코 55년에 일본에는 소위 ‘55년 체제’라고 부르는 정치 시스템이 확립되었어요. 거대 보수정당인 자민당과 좌파 정당인 사회당이라는 양당을 중심으로 해서 성립된 정치 체제죠. 정확히는 ‘1과 2분의 1’ 정당 체제지만요. 이 시스템에서 정책을 주무른 것은 정부와 자민당, 재벌을 중심으로 한 경제 세력, 그리고 고위 관료층이었어요. 이 시스템 아래 다양한 압력단체와 이익단체가 있었고, 자민당 의원들 대부분은 이런 단체들과 지저분하게 연관이 되어 있었지요.
공공사업이란 미명 아래 엄청난 정부예산을 이런 단체들을 위해 마구 쓴다든가 서로 검은 돈을 주고 받는다든가 하는 일을 통해서 자민당은 정치적 지지를 계속적으로 확보해 오고 있었던 거예요. 서구의 복지 체제와 비교한다면 상당히 제한적이고 왜곡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전후에 일본형 복지체제가 성립해서는 55년체제라는 정치 시스템을 밑에서 사회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 55년체제가 80년대 말부터 붕괴되기 시작한 거지요.
현 이미 그 이전인 80년 초반에 나카소네 정권이 등장해서 레이건 정권이나 대처 정권처럼 신자유주의적 입장을 취하지 않았나요?
유키코 하지만 나카소네 시절만 하더라도 아직 55년체제를 유지하려는 힘이 강력했던 것이고, 본격적으로는 고이즈미 정권에 와서야 노골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이게 된 거죠.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정부의 막대한 재정 적자를 줄이고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미명 아래, 전후에 확립된 복지체제를 와해시키려고 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복지 체제가 와해되면 국민들의 정치적 지지가 현저하게 감소하게 될 테니까, 뭔가 다른 정치적 상징 조작을 통해 국민들을 동원하는 게 필요해진거지요.
현 아, 그러니까 신보수주의란 도식적으로 말해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 정치적, 문화적 내셔널리즘’인 거군요.
유키코 네, 맞아요. 고이즈미의 경우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정치적 깜짝 쇼를 벌인 거예요. 북한 방문도 그런 것이고요. 신사 참배 역시 내셔널리즘 정서를 이용해서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려는 것이지요.
현 하지만 그러한 지지는 이전의 복지 체제에서 가능했던 지속적인 정치적 지지와는 달리 일시적인 것이 아닌가요?
유키코 그렇지요. 일본 사회 내부에서도 양극화의 문제는 지금 아주 심각한 상황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정치적인 지지가 사회 구조라는 면에서 극히 불안정하기 때문에, 일본의 신보수주의 정치세력은, 종래 55년체제의 낡은 보수주의 세력과 달리, 그럴수록 더욱 더 매우 대외적으로 공격적인 내셔널리즘을 취하게 되는 거예요. 배외적이고 공격적 내셔널리즘을 통해서 국민들의 관심을 국내의 사회, 경제적 문제로부터 돌리려고 하는 전략인 거지요.
현 그렇다면, 한국 언론의 문제란 뭡니까?
유키코 고이즈미나 아베의 개인적 출신 성분이나 사상적 신념만을 문제삼을 게 아니라 구조적 차원에서 그리고 거시적인 흐름이라는 점에서 일본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올바르게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거지요. 또, 일본의 신보수주의나 신자유주의를 문제삼고 싶다고 하면, 당연히 그런 만큼 한국의 신보수주의나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어야 한다는 거구요.
현 마지막으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소위 ‘폭력’ 투쟁에 대한 지금의 입장은 어떤 것이지요?
유키코 그 당시 우리로서는 불가피했어요. 일제 식민지 때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나 이봉창 의사의 반제 투쟁을 다른 누군가가 이제 와서 단순히 폭력이라든가 테러라고 비난한다면 과연 한국이나 북한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를 상상해 보시면 쉽게 이해될 거예요.
문화비평가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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