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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존 로버츠와 전효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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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존 로버츠와 전효숙

입력
2006.08.2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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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미 연방대법원장에 오른 존 로버츠(51)는 처음부터 대법원장 후보가 아니었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 성향이 뚜렷한 미 대법원에서 저울추 역할을 해온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이 은퇴를 결정하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타고난 보수주의자'인 로버츠를 후임으로 지명했다.

그가 인준절차를 밟고 있던 중 갑상선암을 앓고 있던 80세의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이 숨지는 돌발 변수가 생겼다. 부시는 주저하지 않았다. 로버츠는 곧바로 대법원장 지명자로 격상됐다.

50세 대법원장은 200년을 넘는 미 대법원 역사에서도 파격이다. 그는 1801년 45세 때 취임한 존 마샬 대법원장 이래로 가장 젊은 대법원의 수장이다. 50세의 젊은 대법원장이 70, 80세 고령자가 다수인 대법원에서 평의를 주재한다는 사실은 미국인도 흥미롭게 여길 정도다. 게다가 대법관 지명자에서 대법원장 지명자로 말을 바꿔 타는 일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런 파격과 변칙이 미 대법원과 기능이 유사한 우리의 헌법재판소 소장 지명 과정에서도 보인다. 종신제인 미 대법원장과 임기 6년의 헌재 소장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지만 인선을 둘러싼 상황은 꽤나 비슷하다. 전효숙(55) 소장 후보가 인준 과정을 거쳐 정식 임명되면 헌재는 1981년 설립 이래 처음으로 여성이자 최연소 수장을 맞는다.

최연소 재판관으로 그 보다 나이와 사시 기수가 앞선 선배 법조인들과 함께 하는 평의를 이끌어야 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무엇보다 소장 임기 6년을 보장하기 위해 3년 남은 재판관직을 사퇴하게 한 뒤 재임명하는 절차를 거치는 변칙이 예사롭지 않은 사례를 만들었다.

그러나 두 나라 최고헌법기관의 수장 지명에서 무엇보다 간과할 수 없는 요점은 지도자의 숨겨진 의도이다. 부시 대통령이 젊은 보수주의자를 고른 것이 먼 장래까지 대법원을 보수 기조로 끌고 가려는 포석이듯이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6년의 전효숙 소장 체제를 밀어붙이는 데에는 자신의 정책 성향이 퇴임 후에도 헌재의 결정 과정에 녹아 들기를 바라는 의도가 함축돼 있다는 지적이 무리는 아니다.

물론 전 소장 후보가 대통령과 사시 17회 동기생이라거나 몇 건의 사건에서 정부의 입맛에 맞는 의견을 냈다는 것만으로 부적절한 코드 인사라고 공박하는 주장에는 비약이 있다.

이런 주장은 전 소장이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합헌 의견을 낸 사실 등을 의식적으로 무시한다. 반대로 본능적으로 헌재를 영향권 안에 두려는 정치권력의 속성을 간과하고 전 소장 도 한표의 권리 행사자라는 방어 논리를 펴는 측도 궁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양측의 주장엔 헌재를 제 편에 묶어두려는 편의적 발상이 숨어 있다. 코드론을 부각하는 측은 은근히 헌재의 개혁적 변화를 제어하려 하고 코드론을 비판하는 쪽은 헌재의 보수적 색채가 엷어지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모두 헌재를 흔들려는 외압일 수 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인준 통과 후 "내가 책임질 대상은 공화당도 민주당도 아닌 오로지 미국의 헌법일 뿐"이라는 말을 남겼다. 헌재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흔드는 외압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지금 전효숙 소장 후보가 귀담아야 할 경구가 아닐까. 미국의 대법원에 권위를 세운 힘은 정치 권력이나 여론으로부터 헌법을 지켜내고자 한 대법관들의 정신이었다. 우리의 헌재를 외풍으로부터 지켜낼 가장 강력한 무기는 코드 맞춤도, 코드 엇나감도 아닌, 헌법이 돼야 한다.

김승일 사회부장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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