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행성 성인 오락기 ‘바다이야기’를 둘러싼 의혹이 증폭되면서 이를 18세 이용가로 등급분류 해준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의 심의 과정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특히 ‘바다이야기’가 영등위에서 통과된 뒤 유통과정에서 위ㆍ변조된 게 아니라, 심의 당시부터 1회 당첨한도가 250만원(법정한도 2만원)에 달하는 불법제조 상태였다는 사실이 드러나 이번 심사통과가 외부 로비에 의한 것인지, 제도적 부실에 의한 것인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영등위는 특히 오락기를 직접 보며 심사를 하면서도 제조업체의 설명만 듣고 ‘허가를 내주는 등 ‘수박 겉핥기’식 심사로 도박을 조장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불법 제조 상태에서 통과, 제도 부실? 로비?
20일 검찰 관계자는 “바다이야기는 영등위 심의를 받을 때부터 최고당첨 금액이 1회(100원)당 2만원이 아닌 250만원으로 설계돼 있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심사과정에서는 사행성을 조장할 수 있는 ‘예시’(그림 등을 통해 대박을 예고해 계속 게임을 하도록 하는 것)나 ‘연타’(연속해서 당첨금이 배출되는 것) 부분이 없는 오락기를 제출하고, 유통과정에서만 불법기능을 첨가했다고 추정하던 것과 다른 결과다.
물론 검찰은 “실제 예시, 연타 기능이 있는지를 프로그램 소스를 분석해야 알 수 있는데 이 소스는 A4용지 1,500만 장에 달하는 분량이라 분석이 쉽지 않다”며 “게임프로그램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영등위 위원들은 제조업체의 설명을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심의회의는 보통 1주일에 3회 정도 개최되기에 심도 있는 심의는 어려운 구조이기도 하다.
하지만 외부 로비, 압력에 대한 의혹도 일부 나온다. 전 영등위 관계자는 “해당 업계 종사자들이 칼로 자해하거나 시너를 자신의 몸에 뿌리는 등 실력 행사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구속기소된 성인오락기 ‘황금성’ 대표 이모씨는 자신들이 등급분류를 신청한 ‘극락조’ 게임이 이용불가 판정을 받자 올해 2월 서울 장충동 영등위 사무실에서 게임물 소위 위원 이모(여)씨를 감금하고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2004년 12월에는 심의위원 1명이 등급 분류와 관련해 브로커로부터 뇌물을 받아 구속되기도 했다 .
논란 속 심의 통과 강행도 의심
‘바다이야기’는 2004년 12월 7일 18세 이용가 판정을 받을 때부터 사행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문화관광부가 같은 해 2~5월 다섯 차례에 걸쳐 사행성 오락기 심의 강화를 요청했지만 영등위는 통과를 강행했다.
이런 논란이 더욱 거세지자 지난해 5월에는 ‘바다이야기’ 2.0 버전에 대해 90일간 등급보류 결정이 내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버전 2.0은 8월 25일 18세 이용가 등급을 받아 시중에 유통됐다. 당시 소위원회 의장이었던 박 찬 영등위 부위원장은 “사행성을 조장할 수 있는 ‘예시’나 ‘연타’ 부분을 문화부 고시에 맞게 수정토록 한 후 심의를 통과시켰다”고 반론했다. 절차상에 아무런 하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문화부의 심의 강화 요청이 수 차례 있었고, 사행성 논란이 일었는데도 ‘바다이야기’의 등급분류가 잇달아 ‘이용가능’으로 나올 수 있었던 점이다. 2004년 12월 사행성을 이유로 이용불가 판정을 받은 오락기가 57개에 달했고, 지난해 8월엔 29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문은 더욱 커진다.
이와 관련, 정동채 전 문화부 장관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영등위는 ‘음반ㆍ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 상 대통령에 직속된 독립된 기관이라 문화부가 긴밀히 협의하기가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한 바 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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