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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노 대통령, 공부 좀 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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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노 대통령, 공부 좀 하시지요

입력
2006.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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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중에 “지가 김시롱”이란 말이 있다. 문제는 남이 아니고 너 자신이라는 표현으로 이를 현대화한 것이 얼마 전 유행했던 “너나 잘 하세요”이다.

노 대통령은 광복절 축사에서 그간의 분열을 극복하고 국민통합의 길을 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주장을 들으면서 떠오른 것이 위의 말들이다. 최근의 정치인 중 노 대통령만큼 전투적인 어법으로 불필요한 갈등과 분열을 조장해온 정치인은 별로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한나라당과의 대립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시민운동, 민중운동에 대해서도 매한가지다. 한 예로, 노동자들의 잇따른 분신사태 때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표시하는 대신 전투적 표현으로 노동운동을 공격해 불필요한 갈등을 자초한 바 있다. 따라서 광복절 축사는 노 대통령이 자기 자신에게 해야 할 이야기를 국민에게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FTA 반대론이 종속이론?

계속 추진 의사를 밝힌 한미자유무역협정(FTA)도 마찬가지다. 노 대통령은 불필요한 언술로 이에 대한 갈등을 심화시켰다. 노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 종속이론 책을 섭렵했는데 이는 한국에 맞지 않았다며 그러면 이를 폐기해야 하는데 FTA의 부작용을 심층보도한 언론인 등 FTA 반대세력 중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사고를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는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도 그럴 것이 노 대통령의 주장은 “FTA 반대세력들은 내가 20년 전 폐기한 종속이론을 아직도 신봉하고 있는 지적 지진아에 불과하니 빨리 꿈을 깨라”는 훈시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노 대통령의 주장을 읽은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노 대통령이 국제정치경제이론과 우리의 현실을 너무 모르기 때문이다. 무지한 것은 FTA 반대론자들이 아니라 노 대통령이다.

1980년대 초중반 유행했던 종속이론은 선진국에 종속된 제3세계는 선진국에 착취당해 경제적 정체를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으로 분명히 틀린 것이다. 그래서 진보학계와 운동권도 대부분 80년대에 이를 폐기했다. 다시 말해, 한미FTA 반대론자 중 종속이론을 믿는 사람은 1%도 안 될 것이며 이들이 종속이론 때문에 FTA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뜬금없이 종속이론을 들고 나와 FTA 반대세력을 공격하니 어안이 벙벙해진다. 한마디로 코미디다. 이 같은 촌극이 벌어진 것은 노 대통령과 국제정치경제 가정교사가 무지해 종속을 이야기하면 다 종속이론인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속이란 고이윤, 고임금의 첨단산업으로부터 저이윤, 저임금의 사양산업에 이르는 위계적인 국제분업 질서에 내재한 불평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 같은 불평등은 아직도 남아있다(노 대통령도 이같은 불평등의 존재를 부인하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불평등, 즉 종속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따라서 제3세계가 정체될 수밖에 없다는 숙명론적인 종속이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종속에서도 발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순수가정으로, 반대세력이 틀리고 노 대통령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의 반대 이유는 종속이론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으니 노 대통령은 스스로 만들어낸 종속이론이라는 유령과 싸우지 말고 최소한 상대방의 논리를 이해한 뒤 반박을 해야 한다.

●불필요한 갈등 자초 말아야

노 대통령에게 충고를 드리고 싶다. 우선 잘 모르면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종속이론 같이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중간은 가고 이번처럼 스스로 무지를 폭로하는 일은 피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남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국제정치경제 가정교사를 당장 교체한 뒤 공부 좀 하시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무식하고 용감하고 부지런한 지도자, 특히 자신이 유식하다고 착각하는 지도자이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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