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나만 더 먹어야지. 방바닥에서 땀에 흠뻑 젖어 데굴거리다가 벌떡 일어나 냉장고로 갔다. 요 얼마동안 슈퍼마켓에서 파는 팥빙수에 맛을 들여 냉동 칸에 무더기로 쟁여놓고 산다. 가루녹차를 듬뿍 뿌리고 그 위에 찬물을 부어 잘 휘저은 다음 와삭와삭 깨물어 먹으면, 빙수의 덕에 대한 찬미의 감정을 억누를 수 없다.
그런데, 이럴 수가! 냉동 칸에 팥빙수가 하나도 없다. 한 시간 전에 세 개째를 먹었는데, 그게 마지막 남은 것이었나 보다. 또 사러 나가자니 너무 덥다. 찬물이라도 마실까, 망설이다 그냥 냉장고 문을 닫았다. 이미 팥빙수를 맞이하도록 포맷이 된 혀와 머리가 맹물을 원치 않는다.
이 며칠 새 팥빙수를 비롯한 온갖 빙과를 너무 많이 먹었다. 내 몸이 들큼한 물로 가득 찬 고무풍선 같다. 주의해야겠다. 생각해 보니 내가 살이 찌기 시작한 게 저 악명 높은 1994년 여름부터였다. 그 뜨거웠던 여름에 나는 잠자는 시간 빼놓고 얼음과자를 입에 달고 살았다. 임어당 가라사대 ‘행복은 대체로 장의 운동이 어떠하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튼튼한 장 덕분에 온종일 빙과를 먹어도 끄떡없는 지복을 누렸지만, 그 복의 끝이 무겁다.
시인 황인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