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정성란씨, 20년간 모은 전 재산 장애인단체에 쾌척
"평생 점심으로 수제비만 먹으며 모은 돈입니다. 적지만 뜻있게 써주세요."
팔순이 넘은 고물상 할머니가 자신보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수십년간 리어카를 끌며 폐지 수집으로 모은 전 재산을 선뜻 기부했다.
정성란(82ㆍ대구 수성구 두산동) 할머니는 최근 대구지체장애인협회를 찾아 조용히 수표 90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 "1,000만원도 되지 않는 돈이지만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고 정 할머니는 말했다.
할머니의 직업은 속칭 '고물상'. 매일 오전 7시면 리어카를 끌고 집을 나서는 정 할머니는 최근 2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고물상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하루 수입은 고작 몇천원. "골목마다 폐지를 많이 내놓는 날이면 3,500원, 운수가 좋을 때면 하루 4,000원을 벌 때도 있지요."
정 할머니의 일생은 기구했다. 열일곱살에 시집 가 3년만에 아들을 낳고 행복하던 때도 잠시, 한 해 후 6ㆍ25전쟁이 터졌다. 전쟁터로 떠났다 돌아온 남편은 정신분열증 등 후유증에 시달리다 몇 년 후 세상을 등졌다. 이후 정 할머니는 아이스크림, 껌, 고무줄 장사를 하며 자식을 키워야 했다. "돈이 아까워 점심 때면 밥을 사 먹을 수가 없었어요. 수제비도 사실 사치입니다."
정 할머니는 평생을 모은 재산을 내놓으면서 "이제는 아들도 대학을 마치고 독립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며 "주위에 더 어렵게 사는 이웃이 많은 것 같아서 기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구지체장애인협회측은 당초 정 할머니의 돈을 선뜻 받지 못하고 망설였다. "리어카를 끌고 고물상을 하는 팔순의 할머니께 도움을 드려도 모자랄 텐데 오히려 성금을 기탁받게 돼 가슴이 뭉클했다"는 협회 관계자는 "정 할머니의 900만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돈"이라고 말했다. 대구지체장애인협회는 할머니의 당부대로 가장 형편이 어려운 장애인 45명에게 이 기부금을 나눠줄 계획이다.
정 할머니는 "최근 신경통이 심해지고 있지만 몸이 허락하는 한 평생 리어카를 끌고 골목을 누벼야지"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대구=전준호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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