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은 2년여 전부터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www.malteo.net)’ 사이트를 운영하며 국민의 일상적인 삶에 침투해 남용되는 외국어나 외래어를 매주 하나씩 선정, 공모를 통해 우리말로 가꾸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사이트를 방문하면 무릎을 탁 칠 정도로 아름답고 간결하게 바뀐 우리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계절과 유행을 반영한 듯 이번 주 엔 ‘핫팬츠’를 대상에 올렸다. 1차 공모를 통해 후보로 선정된 깡총바지 덜름바지 토막바지 한뼘바지 반반바지 등 5개를 놓고 결선투표가 진행 중이니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 속에 각종 송년회가 한창이던 지난해 말 ‘드레스 코드(dress code)’가 과제로 제시된 적 있다. 주로 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패션쇼나 파티 참석자들에게 주최측이 요청하는 옷차림새를 뜻하던 이 말이 ‘꼭 다듬어야 할’ 외국어로 꼽힌 것은 일상생활이나 직장관계에서도 옷의 품격을 따지는 일이 빈번해졌다는 얘기다.
참여정부가 유달리 ‘코드’에 집착해 민심이반을 자초한 세태도 일조한 듯 싶다. 예절옷매 등 경쟁후보를 누르고 최종 선정된 것은 ‘표준옷차림’. 화려함은 덜해도 요즘 망신당하는 ‘코드’보다는 백 번 낫다.
■전 세계적으로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올 여름, 직장에까지 과도한 노출패션이 판을 치자 ‘표준옷차림 규율’을 새로 도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최근 외신이 전했다. 노출의 산만함이 작업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업무분위기와 회사 이미지를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의 한 기업은 티셔츠와 샌들 차림의 출근을 금지했고 또 다른 기업은 허용-금지 복장을 열거한 20여 쪽의 핸드북을 나눠줬다. 러시아의 한 주정부는 여직원들의 미니스커트를 불허했고, 프랑스에선 센강의 인공해변에서 토플리스 차림으로 일광욕하는 여성들에게 벌금을 물리는 일도 생겼다.
■벤처기업에서 대기업까지 자유복장 근무제가 확산돼온 우리나라에서도 남녀 가릴 것 없는 노출차림이 최근 개성을 넘어 방종으로 치닫는 사례가 적지 않아 주위의 불쾌감에 따른 근무효율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래서 ‘청바지ㆍ반바지나 가슴부위가 깊게 패인 라운드 티셔츠, 민소매, 미니스커트, 핫팬츠, 원색상의 옷 등을 삼가고 운동화 착용 등을 자제해 달라’는 옷차림 지침을 마련해 직원들의 주의를 환기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캐주얼 출근추세도 역풍을 맞고 있다. 과하면 부족함만도 못할 뿐 아니라 가진 것마저 잃는 게 만고의 진리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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