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핀란드는 비슷한 점이 많다. 자원이 거의 없고 주변이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탓에 많은 부침을 겪은 역사가 닮았다. 삼림이 유일한 자산이던 핀란드는 노키아로 대표되는 지식산업에 국가역량을 모아 유럽을 대표하는 IT(정보기술) 선진국으로 성장했다. 고급인력이 핵심인 IT산업이 만개한데는 높은 교육열이 절대적 역할을 했다.
핀란드 경제에 그렇다고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율의 세금으로 인한 근로의욕 저하와 해외로부터의 투자 감소, 저출산ㆍ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감소 등이 새로운 과제다.
한국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이 9월10~11일 헬싱키에서 열리는 6차 아시아ㆍ유럽 정상회의(ASEM) 참석차 핀란드를 방문하기에 앞서 핀란드의 오늘을 취재하고 타르야 할로넨 대통령(63)을 인터뷰했다. 할로넨 대통령은 핀란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차기 유엔총장, 아시아 출신이 적합"
-한국에서도 여성의 정치 참여가 늘고 있다. 여성이 정치에 참여할 때 장점은.
"국제정치의 현안은 대부분 남성들 위주로 짜여져 있어서 여성들의 역할이 제한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인권이나 여성, 아동문제는 여성들이 더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이런 문제들은 더 중요하게 대두될 것이다"
-대통령이 되기까지 여성으로서 느낀 사회적 장벽이 많았을 텐데.
"나는 핀란드에서 최초의 노동조합 변호사로 시작해 법무장관, 외무장관, 대통령이 됐다. 모든 것이 얼음을 깨고 시작하는 것과 같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변호사 시절 비서도 없이 일을 해야 했고, 의회에 진출하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렸다. 대통령이 되는 과정은 더 어려웠다. 2000년 대선 때 내가 속한 사회민주당은 다수당이 아니었다. 나는 어머니이면서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런 모든 것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나를 받아줬다. 두번째 대선에서는 세계화를 급진적으로 추진한다는 비난에 시달렸으나 국민들의 나에 대한 신뢰는 흔들리지 않았다. 모두 사회가 맞이한 어려움이나 차이에 대해 솔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음달 노무현 대통령이 국빈방문 하는데, 정상회담에서 주요의제는.
"세계화와 테러리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한국과 핀란드는 높은 교육수준을 바탕으로 인적자원 중심의 경제성장을 추구해 성공한 공통점이 있다. 동시에 양국 모두 빠른 경제성장 만큼 미래의 불안으로부터 도전 받고 있다. 하이테크 산업과 IT 분야에서 양국의 교류가 더 활발해지길 바란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인상은.
"언젠가 대화한 적이 있는데 정말 좋은 대화 상대였다.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한국은 유엔의 역할에 충실해왔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런 면에서 나는 차기 유엔 사무총장이 아시아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해 왔고 지금도 아시아 출신이 적합하다고 본다"
-유럽연합(EU)은 자유무역협정(FTA)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지 않은 느낌이다.
"EU의 기본 방침은 세계무역기구(WTO) 내에서 다자간 무역협정을 맺는 것이다. 도하협정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는데 불과했다. 앞으로 한국도 WTO가 정상화하는데 협력해 주길 바란다"
■ 强小國! 저력은 교육에서…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작은 나라 핀란드가 세계 최고의 국가경쟁력을 자랑하는 비결은 교육이다. 나무와 비철금속 외에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데다 강대국에 인접해 있는 핀란드는 생존 전략으로 "사람이 자원이다"는 슬로건를 내걸고 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해 왔다.
한국의 교육열이 사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비정상적인 것이라면 핀란드는 국가가 모든 것을 지원해주는 철저한 공교육 중심이다. 핀란드 정부의 공공부분 지출의 11% 이상이 교육에 투자될 정도다.
사립학교가 일부 있지만 핀란드 교육위원회의 관리를 받아야 하고 교육과정도 공교육과 똑 같기 때문에 핀란드에서 사교육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7세부터 중학교에 해당하는 15세까지는 교육과정이 같은 기본교육을 받고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16~18세까지는 일반교육과 직업교육으로 나눈다. 핀란드 학생의 54%가 일반교육과정을 듣고 46%는 직업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교육과정을 바꿀 수 있다. 직업교육을 받은 후에도 기술전문대학에 진학해 전문가 과정을 밟을 수 있다.
핀란드에서는 직업에 따른 연봉과 사회적 지위의 차이가 거의 없어 자신의 적성에 가장 적합한 교육을 받으면 그만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공교육시스템. 잠자는 것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학교가 해결한다. 수업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수학과 언어다. 수학은 학생들의 창의력를 길러주는데 중점을 두고, 언어는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핀란드에서는 여성의 경제적 참여를 높堅?위해 탁아시설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생후 8개월부터 탁아시설에 맡겨지며 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철저한 관리를 받을 수 있어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어느 나라보다 활발하다.
모든 탁아시설은 기본적으로 무료지만 시간과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 부과된다. 소득수준이 낮으면 대부분 무료고, 소득수준이 높으면 누진제로 금액을 낸다. 하지만 소득수준이 놓은 맞벌이 부부라도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한달 비용이 200유로(24만원)를 넘지 않는다.
탁아시설 내 아이들은 개월수에 따라 4그룹으로 나누어 그룹에 따라 교육을 받는다. 3세까지는 문자교육을 시키지 않고 놀이에만 집중한다. 다른 아이와 놀면서 사회성을 기르는데 목적을 둔 것이다.
핀란드의 탁아시스템은 여성들의 경제활동을 촉진하고 이는 국가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핀란드는 노령화와 출산율 저하로 인한 노동력 부족을 탁아시설을 기반으로 한 여성노동력 확충으로 문제를 풀어내고 있다.
■ 노키아? 새 동력 찾는 경제
구 소련 붕괴이후 경제위기를 겪은 핀란드가 21세기 신흥강국으로 떠오른 배경은 무엇일까. 인구 520만의 소국이지만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육박할 만큼 경제강국이 된 이유는 분명하다. 높은 교육수준에서 나오는 고급 노동력과 이를 기반으로 한 지식산업이다. 하지만 핀란드도 고민이 많다. 미래의 성장동력이 핀란드 경제계의 화두로 떠오른 것은 이 때문이다.
핀란드 경제를 말할 때 노키아가 빠지지 않는다. 피혁을 만드는 회사에서 세계 최고의 IT 업체로 거듭났다. 하지만 노키아가 싼 인건비를 찾아 신흥시장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핀란드 내 제조업 비중은 줄어들었다. 핀란드 경제에서 제조업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20%에 불과하다. 노동인구의 68%가 서비스업에 종사를 할 정도로 지식기반 산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노키아에 근무하는 대부분의 인력은 디자인이나 해외공장 관리, 전략수립을 하는 고급 노동자들이다. 핀란드의 디자인 산업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선반엔진도 마찬가지다. 핀란드는 경제성장의 동력을 고급 노동인력 창출을 통한 로열티 수입에 초점을 맞춰왔다.
실용주의에는 여야가 없는 정치적 합의도 핀란드 경제를 이끄는 힘이다. 사회복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세율은 45%에 달하지만 국가 경쟁력을 위한 것이라면 여당이든 야당이든 얼마든지 노선을 바꿀 준비가 돼 있다. 합의를 통해 결정된 것은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국민들의 삶의 질과 직결된다.
강소국으로 성장했지만 미래를 위한 동력이 없다는 것이 핀란드의 고민이다. 10%에 이르는 고실업과 저출산, 높은 세금 때문에 해외로부터의 투자가 줄어드는 등 어두운 그림자도 만만치 않다.
핀란드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고율의 세금으로 인한 젊은이들의 근로의욕 상실이다. 최근 핀란드의 젊은 고급인력들이 고율의 세금을 피하고 더 나은 보수를 찾기 위해 프랑스나 미국으로 대거 빠져나가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고율의 세금은 해외 투자가들의 투자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고급인력을 활용하기 위해 핀란드를 찾았지만 정작 30%가 넘는 세금 때문에 투자를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게다가 고령화는 급속하게 진행되는데 출산은 늘지 않아 잠재 성장률도 줄어들고 있다.
핀란드 경제연구소의 파시 소르요넨 연구원은 "현재로서는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한 뾰족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고백했다.
핀란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늘리고 은퇴한 고령의 인력들을 재교육해 정년을 늘리고 있다. 연금을 이유로 노동시장에 나오려 하지 않던 은퇴자들은 갈수록 연금이 줄어들자 경제전선에 다시 나서는 추세다.
소르요넨 연구원은 "복지수준이 높고 사회안전망이 탄탄하기 때문에 핀란드 경제가 급속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극히 적다"고 분석했다. 성장 속도는 줄어들지 모르지만 사회안전망이 갖춰지는 속도가 더 빠른 만큼 큰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헬싱키=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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