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장성희의 막전막후] 관객 취향만 따라가기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장성희의 막전막후] 관객 취향만 따라가기엔…

입력
2006.08.19 00:01
0 0

일주일 동안 극장 일곱 군데를 돌아보았다. 객석 대부분이 헛헛하게 비어 있었고, 무대는 저 홀로 떠있는 섬만 같았다. 이럴 때는 관객이 낸 발자국을 쫓아가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그래서 장기 공연물들 중 연일 객석을 채우고 있다는 연극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오늘날 관객은 무얼 보기를 원하는가? 그곳에 가면 ‘관객’이 정말 있나?

요즘 어떤 연극은 뮤지컬 등 흥행 대작이 아닌데도 꾸준히 많은 관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홍보에 열을 올리지 않더라도 재미와 감동을 담보하고 있다면 대중의 인터넷 정보 교환력에 힘입어 자발적인 관객 동원이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관객층은 소수만이 연극을 향유하던 ‘정예반’에서 대중이라는 ‘평준화반’으로 옮겨갔지만 이로써 연극이 잃은 것은 인문학적 영향력의 상실이다.

역사와 사회의 문제를 제기하고 성찰하던 연극의 몫이 ‘대중이 요구하는 것은 무거운 사유가 아니라 가벼운 재미와 감동일 뿐’이라는 대중문화 산업의 자의적인 유통 논리 앞에서 좁아지고 있다. 연극을 통해 고정된 삶의 시각을 의심하고, 안전한 일상의 질서와 미학을 휘젓는 충격을 경험하며, 극장을 나서면서 삶 속으로 미해결된 문제를 가져가길 원하는 관객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3만 명이 다녀갔다는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5만 명이 보았다는 ‘라이방’, 그 밖에도 흥행일로에 있는 연극들은 이들 관객들의 욕구를 수렴하고 있는가?

흥행작들을 살펴보면 대략 세 가지 공통점이 눈에 띈다. ‘살아있는 캐릭터’, ‘웃음의 유발’, ‘도덕적 가치 옹호’다. 이 중에서 주제를 강조하는 면이 가장 흥미롭다. 속도와 몰인정에 치이는 현실 속에서 이 연극들은 느긋하고 묵지근한 ‘정(情)과 신의(信義)’를 적극 옹호한다. 동원하는 언어는 거칠고, 욕설이 감탄사처럼 앞뒤를 매길지라도 그 안에 흐르는 것은 인간적인 도리와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덕적 가치다.

주제가 사라지거나 주제를 감추는 현대 예술의 흐름에 비춰본다면 이들 연극은 촌스러울 정도로 주제를 드러내고, 설명하고, 바리바리 싸서 관객에게 한 아름 선사한다. 이것은 한국연극의 후진성인가, 가능성인가? 작은 사회공동체인 극단과 관객이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 흥행물이라면 이러한 주제의식에 대한 합의와 공감은 우리 사회 전반의 건강함을 재는 바로미터일 수도 있다. 멸절해가는 가치를 붙잡고 안간힘 쓰는 주인공을 향한 관객의 시선에서 냉소와 조롱보다는 공감과 연민을 발견할 수 있으니 그런 밝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극장이 상식적인 윤리의 도장이 되는 순간 관객들은 극장이 주입하는 주제에 동화되어 선량함과 인정이라는 가치의 회복만이 삶의 문제들의 만병통치약인 양 안착해버린다. 또한 연극을 올리는 이들 쪽에서는 윤리적 도취감에 안주해 미학적 세공을 등한시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극작ㆍ평론가 장성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