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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터치] 거리 전체가 공연장 古都가 들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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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터치] 거리 전체가 공연장 古都가 들썩인다

입력
2006.08.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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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스코틀랜드 왕국의 수도였던 에든버러. ‘근대의 아테네’라고도 불릴 만큼 아름다운 이 도시의 번화가 하이 스트리트. 중세풍의 고풍스런 건물들과 그림책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정원이 야트막하게 사람들과 어깨를 겨누는 곳. 17일(현지 시간) 오전, 여느 때와는 다른 분위기가 이 곳 사람들의 고즈넉한 일상을 전복했다. 갑년을 맞은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 범인이라면 범인.

그 곳의 소문난 마술사 고로니 씨가 대중들의 열띤 박수 갈채 속에 갇혀 있다. 300명은 족히 돼 보이는 사람들이 겹겹이 둘러서서 그의 현란한 저글링 묘기에 빠졌다. 이후 한 시간 간격으로 각종 재주꾼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더니 대중들의 일상 탈출을 추인한다. 여성 연출가 사라 제임스도 나와 행인들에게 오후 2시에 하는 ‘겨울 이야기’(셰익스피어 작)을 보러 오라고 열을 올린다. 때마침 브라스 밴드가 신나는 행진곡을 연주한다. 브라스 밴드의 경쾌한 소리에 박자를 맞추기라도 하듯 길 바로 옆에 내걸린 푸른 휘장 하나가 펄럭인다. ‘에든버러 페스티벌’

어셈블리(Assembly), 플레전스(Pleasence), 오로라 노바( Aurora Nova) 등 3대 극장은 물론이고, 그럴싸한 건물 261곳이 4일부터 28일까지 모두 공연장 등으로 다시 태어난다. 바람은 당연히 공항부터 불어온다. 에든버러 공항에서 외환 업무를 보고 있는 닉 더글러스 씨는 “에든버러 인구가 40만명 인데, 페스티벌이 열리면 에든버러 인구의 2배 반이 넘는 외지인들이 몰려온다”고 한다.

올해 행사는 모두 261개 공연장(venue)에서 2만8,014개 작품이 공연된다. 상설 공연장은 다섯 개뿐이지만, 교회 공장 디스코장 등 공연장으로 사용할 수 있으면 모두 용도가 변경된다. 연극, 피지컬 시어터(신체극), 어린이극, 이벤트, 회합 등의 용도로 사용된다.

반백년이 훌쩍 넘은 이 제전은 때도 많이 탔다. ‘초기 정신’으로의 회귀가 종종 거론되는 이유다. 특히 갈수록 코미디물이 증가하는 추세는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스탠딩 개그 등 코미디물이 인건비나 설치비 등 제작비가 싸게 먹힌다는 점이 도사리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코미디물이 만만찮은 비중을 차지하는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춘천마임페스티벌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이번 에든버러 축제에서 마임 등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고 있는 최석규 씨는 “최근 세계 연극계는 신체극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고 한다. 그는 “굵직한 테러 사건 이후 종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현상을 정확히 반영한다”고 지적한다. 관타나모 사건이나 예수 이야기 등이 연극으로 접근되고 있는 상황이 그것이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은 세계 연극계의 시금석이다. 연극에 대한 상업 자본의 침투, 연극 고유의 자정 노력이 연극적으로 공존한다. 연극적 가치와 비연극적 가치가 공존하는 곳이다. 그래서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다. 현재 현실적으로 에든버러의 관심사는 양분돼 있다. 먼저 관광객용 코미디, 그리고 기획자나 배우들의 실험성 짙은 작품이다. 그래서 에든버러는 솔직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에든버러의 대표적인 극장인 필름하우스에는 때마침 영화 ‘괴물’의 표 매진 사례 깃발도 나부끼고 있다.

에든버러=장병욱 기자 aje@hk.co.kr

■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어떤 행사인가

통일된 기획은 없다. 조직적인 체계나 장르의 규정도 없다. 무대가 있고, 표현 도구만 갖추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연 축제, 프린지(Fringeㆍ언저리, 주변이라는 뜻) 페스티벌.

온갖 제약과 굴레를 벗어 던진 프린지 페스티벌은 자유로운 상상력과 실험정신을 모태로 삼고 있다. 예술가들은 연극, 뮤지컬, 무용 등 갖은 공연 장르를 아우른 축제의 한마당에서 무한한 창작의 나래를 펼치며 관객과의 소통을 모색한다.

탄생은 들꽃과도 같았다. 1947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초청 받지 못한 8개의 작은 공연단체는 간이 무대를 만들어 자신들만의 축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을 꾸몄다. 이름 그대로 변두리 축제. 그러나 자율성과 참신함을 무기로 곧 중심이 되었다. 2004년에 팔린 티켓만 125만3,776장이었고, 7,500만 파운드(약 1,425억원)의 경제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에든버러가 잉태한 프린지 정신은 곧 세계로 퍼졌다. 세계 최고 권위의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은 67년 프린지 정신을 수혈해 아비뇽 페스티벌 오프를 만들었다. 82년 캐나다 에드먼턴 프린지 페스티벌이 탄생했고, 같은 해 홍콩에도 아시아 최초의 프린지 페스티벌이 등장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 한국 '점프'의 독특함에 현지인 매료

낯익어 친근하고 낯설어 즐겁다. ‘난타’에 이어 한국적 넌버벌 퍼포먼스의 대표적 작품으로 자리잡은 ‘점프’가 세계 공연 문화 상품의 유력한 준거틀인 에든버러 페스티벌을 계기점으로 해 버전업을 시도했다.

이번 ‘점프’는 우선 총상연 시간이 축소된 점이 전과 다르다. 1시간 15분으로 시간이 줄어든 것은 되도록 많은 공연을 올리려는 극장측의 요구를 수용한 때문이다.

17일(현지시간) 작품이 상연된 어셈블리홀은 좌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언어의 사용을 극히 자제할 뿐 아니라, 사용하더라도 영어로 구사한 점 등은 모국어의 틀을 넘어 보편적 상품이 되기를 지향하는 공연물의 추세를 그대로 입증했다.

언어가 멈춘 곳, 행위가 빈 자리를 메운다. 무술 동작은 마임과 결합됐고, 과장된 동작 덕에 더욱 희화화했다. 쌍절권을 미친 듯 돌리거나, 유머러스하게 재주 넘기를 잇달아 할 때면 극장에 모인 남녀노소의 서양 관객들은 자지러들 듯 웃는다. 디즈니랜드의 만화 영화나 헐리우드 코미디 등의 웃음 코드를 소화해 낸 덕이다. 또 서양인들에게 막연히 남아있는 오리엔탈리즘의 환상을 상업적으로 기호화시키는 데 성공한 때문이기도 하다.

장유유서의 논리가 엄존하는 동양을 학습시키는 셈이다. 할아버지가 객석에 앉아있는 중년의 서양 남성을 끌어내 “오늘의 에든버러 고수(Today's Edinburgh master)”라며 젠체하면서 무술시범을 보일 때는 박수와 환호가 잇따른다. 이 극장의 여감독 루이즈 샹탈(38)은 “속도감 있는 진행과 급속한 발상(quick play, quick thinking)이 에든버러에 설 수 있는지를 가르는 최대 관건”이라며 “현재 8,9할의 객석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점프’는 그 점을 실증한다”고 말했다.

‘점프’는 확실히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공연으로의 변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왔다. 의미 있는 대목은 ‘점프’가 이뤄낸 변신의 미덕으로 해외 기획자들이 한국 작품에 보다 주목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이번 공연이 극장측의 초청으로 이뤄졌다는 점 또한 고무적이다.

■ 젊은인디의 오색칵테일/ '홍대'로 나와봐 예술에 취해봐!

16일 오후 8시 서울 홍대앞 포스트극장. 극장을 가득 메운 100여명의 관객들은 발레와 연극, 현대무용이 어우러진 원댄스 프로젝트의 ‘해프닝’을 진지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다. 예상을 뒤엎는 엉뚱한 전개에 웃음을 터트리고, 화려한 동작에는 박수와 환호가 전해진다. ‘해프닝’은 홍대 인근에서 진행되고 있는 독립 예술 축제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의 한 프로그램.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이 페스티벌을 찾아왔다는 회사원 장은하(29)씨는 ‘해프닝’을 관람한 후 “평소 접하기 힘든 색다른 공연을 즐길 수 있어 좋다”면서 “현대무용은 막연히 지루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독특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며 연신 즐거운 표정이다.

공연이 끝난 후 어디선가 들리는 음악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야외무대인 스테이지 잔잔에서 어쿠스틱 밴드 ‘어쿠스트릿’의 무대가 펼쳐지고 있다. 기타 두 대와 멜로디언, 그리고 정수기용 생수통이 악기의 전부지만 180여명의 관객들은 바닥에 앉거나, 혹은 선 채로 몸을 가볍게 흔들며 밤이 늦도록 음악에 취한다.

20대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동네 주민들도 눈에 띈다. 대학생 길현진(21)씨는 “저렇게 소박한 악기가 많은 사람들을 흥겹게 하다니 신기하다”며 “거리 곳곳에서 자유분방하고 창조적인 에너지가 넘쳐 나는 것같다”고 말했다.

11일부터 홍대 인근 공연장과 전시장, 그리고 거리 곳곳에서 독립 예술의 축제가 열리고 있다. 올해로 9회째인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의 슬로건은 인디 예술과 오디세이를 붙인 ‘인디세이’.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발견하는 항해를 떠나자는 뜻이다. 음악축제인 ‘고성방가’, 무대예술제인 ‘이구동성’, 미술전시축제인 ‘내부공사’, 거리예술제인 ‘중구난방’ 등 4개 테마 아래 500여 개의 다양한 볼거리가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연극, 무용, 전시, 마임, 퍼포먼스, 인디음악, 포크음악, 국악, 마술 등 장르를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관람료는 음악과 무대예술제는 일반 1만2,000원, 청소년 8,000원, 미술전시와 거리예술제는 무료다.

젊은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는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은 사전 심사가 없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의 무대를 가질 수 있다. 참가비가 없고 대관료도 10만원을 넘지 않는다. 티켓 판매 수입 가운데 70%가 공연자들의 몫이다. 예술가들은 평소 여러 제약 때문에 주저하고 시도하지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다.

대중의 호응도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17만 명이 찾아왔는데 올해는 20만 명을 넘길 것이라는 게 사무국측의 예상이다. 원조인 에든버러를 비롯해 세계 70여개국에서 프린지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지만 아시아권에서는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이 규모나 수준 등 모든 면에서 최고라는 게 주최측의 자랑이다. 최순화 사무국장은 “페스티벌 초창기에는 단순한 호기심에 찾아오는 관객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색다르고 독특한 것을 직접 느끼고 싶다는 열린 마음으로 오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 상품을 팔기 위한 장으로 변모한 데 비해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은 예술가 스스로가 직접 ‘판’을 만들어 관객을 만나려고 하는 순수한 열정이 있다”면서 “독립 예술의 창작과 교류에 힘을 실어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해프닝’의 예술감독으로 이번 페스티벌에 참여한 원댄스 프로젝트의 이동원씨는 아지드 현대무용단 소속의 무용수. 평소 무용과 다른 예술 장르의 공동 작업에 관심이 많았던 이씨는 사진작가, 전문 무용수, 대학생 등 평소 친하게 지내던 선ㆍ후배들과 프로젝트팀을 꾸렸다. 2회 공연을 하는 데 총 150만원의 예산을 들였다는 이씨는 “프린지 페스티벌은 돈은 없지만 열정 있는 아티스트들이 하고 싶은 작업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자유롭게 만나 새로운 창작을 위한 바탕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며 “이번에 홍콩와 마카오의 프린지 페스티벌 관계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연장 등 페스티벌을 위한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제한된 공연장을 많은 참가자들이 공유하다 보니 시간에 쫓겨 리허설도 못한 채 무대에 서는 경우도 있다. 또 자유 참가로 이뤄지기 때문에 공연이나 전시의 질이 들쭉날쭉한 것도 사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작품도 있지만 입장료를 받기에는 크게 부족한 공연도 있다. 이동원씨도 “관객과의 소통보다는 자기 만족을 위한 작품들이 많은 것 같다”며 “하지만 이것이 프린지 페스티벌의 장점이자 단점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은 27일까지 계속된다. ‘프린지’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인터넷 지식검색창에 글을 쳐넣기 보다는 직접 찾아가서 만나고 느껴보는게 더 나을 듯싶다. 떠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 www. seoulfringe.net (02) 325-8150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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