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휴전에 합의했지만,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이 남긴 상처는 너무 깊고 컸다. 무고한 양민이 죽거나 다쳤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상대를 향한 증오와 적개심에 차있다. 중동 평화는 갈수록 어렵게만 보인다.
9ㆍ11 사건의 피해국이면서, 중동을 포함한 세계 분쟁의 중심에 서있는 초강대국 미국. 바로 그 미국의 젊은 작가 조 사코가 만화로 그려낸 팔레스타인의 현실이 번역돼 나왔다. ‘팔레스타인’(글논그림밭 발행)은 이스라엘에 맞서 일어난 팔레스타인 민중의 ‘인티파다’(봉기) 현장을 그려낸 만화 작품이다.
젊고 호기심 많은 미국인 청년 조 사코는 1991년 말부터 92년 초까지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와 웨스트뱅크 거리를 돌아다닌다. 난민촌의 버거운 삶, 자식 잃은 어머니의 슬픈 얼굴, 넘치는 청년 실업자, 무자비한 경찰, 저녁마다 모여 토론하는 사람들…. 그곳에서 그가 만난 것은 지치고 누추한 삶이었다.
비록 두 달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때의 경험을,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생생하게 만화로 복원했다. 만화가 갖는 대중 지향적 특성을 감안할 때, 그 어떤 매체보다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았다. ‘오리엔탈리즘’의 저자인 고 에드워드 사이드는 ‘한 두 명의 시인과 소설가를 제외하면, 이 비참한 상황을 사코보다 더 절절하게 그린 사람은 없다’고 평가했다. 96년 미국 도서출판 대상 수상작이다.
중동의 위기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작가의 14, 15년 전 경험은 본질적으로는 지금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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