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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美에 보내는 경고 '세계사를 바꿀 달러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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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美에 보내는 경고 '세계사를 바꿀 달러의 위기'

입력
2006.08.18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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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보너, 애디슨 위긴 지음ㆍ이수정, 이경호 옮김 / 돈키호테 발행ㆍ1만7,000원

인류의 모든 제국(帝國)은 전쟁으로 태어나 전쟁 속에서 성장했다. 원대한 가치의 기치 하에 속국의 치안을 핑계 삼으며, 제 힘의 우산 아래 더 많은 나라를 끌어넣으려는 속성을 갖고 있는 존재가 제국이기 때문이다.

로마가 그랬고, 대영제국이 그랬다.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 캐치프레이즈는 ‘우수한 그리스 문화를 널리 퍼뜨린다’는 것이었다. 미국 제국화의 길을 턴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1917년 4월 유럽전쟁 참전 의회 연설 취지 역시 “세계의 민주주의를 위해서”였고, 부시의 이라크전 명분도 ‘깡패의 응징’이었다.

하지만 미 제국이 역사 속의 모든 제국들과 다른 점이 있다. 속국들로부터 세금과 조공을 걷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빚’을 끌어다 쓴다는 점. 미국의 경제 논객인 빌 보너와 애디슨 위긴이 함께 쓴 ‘세계사를 바꿀 달러의 위기’는 역사와 금융공학의 분석적 기법을 통해 이 ‘빚의 제국’의 어두운 미래를 서늘하게 예언한다.

모든 제국이 멸망했듯 미 제국 역시 멸망하며, 그 멸망의 단초는 “금융 위기들의 조합(달러가치 폭락, 주식ㆍ주택시장 붕괴 등)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게 저자들의 진단이다.

저자들은 “시장이 의견을 만드는 것이지, 의견이 시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는 월스트리트의 오랜 격언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제국의 신념 역시 환경이(인간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신념에 근거한 ‘이상한 퍼포먼스’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믿을 필요가 있는 것을 믿게 된다. 미국은 이미 하나의 제국이고 이 제국에 속한 국민들은 제국의 지지자들처럼 사고해야 한다.” 제국의 신민들은 도저히 불가능한 사실을 믿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들이다. “부동산 가격은 절대 내려가지 않아. 소비로 인해 부유해질 수 있어. 저축따위는 문제되지 않아. 쌍둥이 적자도 마찬가지야.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땀 흘리게 놔둬. 머리 쓰는 일만 우리가 할 거야.”

미 제국의 국방예산은 전 세계 나머지 나라의 국방비보다 많다. 국민은 연간 7,000억 달러의 무역적자 위에 소비의 풍요를 누린다. 쌍둥이 적자 위에, 달리 말해 빚더미 위에 구축된 ‘팍스 달러리움’의 신화를 제국의 신민들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저자들은 현재 미국의 대외 달러 부채가 약 36조 달러, 연간 이자 비용만 1조8,000억 달러(5% 이자율)라고 밝힌다. “가난한 나라들은 미국인들에게 제품을 팔아 달러 지폐를 얻는다.

미국인들은 그들 수중에 들어온 것은 무엇이든지 다 써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다. 일단 달러는 인쇄기로 복사된 뒤 중국이나 다른 제조업 국가 사람들에게 건네지며 결국 그 달러는 자신이 태어난 장소인 미국으로 빚이 되어 되돌아온다.” 2005년 중국은 달러 붕괴를 막기 위해 미국에 해마다 3,000억 달러를 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저자들은 “이제 중국과 일본 중앙은행의 단 한마디가 미국 경제를 심각한 슬럼프에 빠지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미국 국채 매도’라는 말이다”고 썼다.

지난 세기 말 미 제국의 승리에 압도된 한 어리석은 학자는 ‘역사의 종언’을 선언했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지금의 제국 역시 살아있는 생명체이며 역사 속의 모든 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미 제국 앞에도 무덤과 묘비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날은 예고 없이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죽기에 좋은 시기는 없다. 그렇지만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부랑자에게 술을 한 잔 사라. 그리고 금을 사라.”

저자들의 관점은 다분히 미국적이다. 제국을 비판하거나 냉소할 때도 자신들의 조국에 대한 연민과 걱정을 아주 넘어서지는 못한다. 또 가령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화의 거센 바람으로부터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이들은 아시아인들”이라는 식의 단편적이고 경제주의적인 시각 앞에 독자들은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로마나 몽골 등 제국의 역사와 거시경제, 월스트리트의 첨단 금융공학을 엮어가며 ‘빚의 제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분석해가는 이들의 논리는 자못 명쾌하고 흥미롭다. ‘당장 금을 사러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질 정도로.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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